▣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둘레[dulle] 명,
사물의 바깥 언저리. 주위. 사물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돈 길이. 시인 안도현은 “이 술잔에 둘레가 없었다면…/ 나는 입술을 갖다대고 술을 마실 수 없었겠지/ 그래, 입술에 둘레가 없었다면…/ 나는 너를 사랑할 수도 없었을 테고”(시 ‘둘레’ 중)라고 말했지만 건물 주인은 “우리 건물 둘레에 차 세우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사물은 둘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사적 공간은 공공 공간을 잠식한다. “나무 둘레가 참 크다.” 뿌리 깊고 가지 많은 거대한 나무를 상상한다. 2차원의 ‘길이’ 단위로 표기되는 ‘둘레’는 3차원의 ‘부피’를 가늠케 해주는 ‘크로스오버’ 단위다. 몸의 ‘둘레’는 몸의 수학이자 사회학이 된다. 가슴둘레, 허리둘레, 엉덩이둘레. 배꼽과 성기를 관통하는 직선을 X축으로 놓고 3개의 상수를 그래프상에 표기해 완만하게 이어보라. 몸매분포곡선이 추출된다. 표준 분포와의 오차범위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끊임없이 헬스클럽의 문을 두드린다. 최근 대한비만학회는 “남자는 90cm, 여자는 85cm 이상의 허리둘레를 가지면 복부비만”이라 정의했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 등이 겹치는 ‘대사증후군’과 관련이 있다. 특정한 서구형 신체조건을 숭상하는 일부는 ‘머리둘레’에 집중하기도 한다. ‘화면발=머리둘레’라는 미디어의 형이하학적 공식이 영향을 줬다. “주위를 둘레거리며 여관을 나온 그들은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를 잡아 탔다.”(김용원 <곰배팔 금불상> 중) 동사 ‘둘레거리다’는 ‘이리저리 사방을 자꾸 둘러봄’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고개를 들어 둘레거려 보아라. 나의 ‘둘레’는 인간관계의 바로미터. 농담을 거는 이, 웃음을 보이는 이가 몇 명인가. 날씨가 쌀쌀해진다. 둘레를 가꾸며 ‘애정’의 부피를 키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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