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명숙/ 작가
신문을 펼치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구국운동’이란 단어가 튀어나온다. 테러다, 지진이다, 나라 밖도 비명이 낭자한데 나라 안도 위기에 처했나, 가슴이 철렁하다. 반대편의 주장을 보니 위기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협박이란다. 그래? 그럼 안심해도 되나? 한숨을 돌리다가 아무리 협박이라도 그 주체가 제1야당을 비롯한 주요 권력들이라면 쉽게 안심할 수 있는 일일까, 다시 걱정이 된다. 협박당하는 국민, 그 국민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대학을 잠식하는 인질국
어쩌면 인질 비슷한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대한상공회의소 김아무개 부회장이란 사람이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취업상의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 이게 웬 백주대낮의 인질극이야, 가슴부터 떨렸다. 학생들도 학교 당국도 떨었다. 결국 동국대는 성명을 내고 강 교수 발언에 대한 유감을 나타내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고도 계속 떨고 있다. 그런데 동국대와 그 학생들만 떨고 있는 것일까? 지난 5월 이건희 회장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반대 시위를 한 고려대의 학생들은 떨지 않아도 되나? 삼성쪽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건 공식적인 정답이 아니라 감춰진 ‘X파일’이라는 걸 대학생 정도면 다 안다. 김아무개 부회장의 발언을 접한 일부 학생들은 지금 충분히 불안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질극이 노리는 공포의 효과다. 앞으로 공포의 효과는 동국대와 고려대뿐 아니라 전 대학가로 퍼져나갈지 모른다.
‘올바른 시장경제 교육과 이념이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앞으로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대학 수업 내용 등을 참고하도록 해야 한다’는 김아무개 부회장의 발언은, 설사 그가 그 발언을 철회한다 해도, 앞으로 대학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며 온갖 괴담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공포스런 괴담들은 학생들 스스로 교수의 사상 검증에 나서게 하고, ’학교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시장경제 이념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쫓아내게 할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에서 특정 세력에게 강정구 교수는 존재 자체가 공포다. 그런데 다수의 국민은 이유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를 두려워한다. 문제가 된 그의 기고문 내용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토론이 생겨날 여지도 없이 온 나라가 둘로 갈라져 ‘위기 담론’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고, 다수의 국민은 싸움판의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는 가운데 오랜 세월 내재화된 적색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그들 스스로를 규율하게 만든다. ‘구국운동’의 똥배짱은 여기에 기대고 있다.
‘강 교수의 생각을 비판하고 싶었지만 검찰이 나서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는 한 교수의 탄식은 정치권발 위기와는 다른 우리 사회의 진짜 심각한 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위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기실 사람들을 더 두렵게 하는 것은 진짜 위기보다 가짜 위기다. 공포는 실체가 잘 잡히지 않은 채 부풀려질 때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정권의 구체적인 행위나 우리 사회의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아니라 정권의 ‘속내’나 ‘의도’ 같은 것을 문제 삼고 있는데, 실체도 없이 멋대로 해석되는 이것들이야말로 공포를 유발하는 데 적격인 유령들이다.
실체도 없이 멋대로 해석되는 것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은 폭력적인 미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공포’라는 키워드를 사용했다. 정치권력과 언론 등이 어떻게 공포를 조장해 국민을 통제하고 조종하는지를 특유의 시니컬한 화법으로 보여준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백인 지배층에 대한 그의 독설은 신랄하다. 미국 사회에 비판적인 그지만 좋은 점도 꼽을 줄 아는데, 그건 바로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미국 사회엔 ‘하고 싶은 말’을 가로막는 공포는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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