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서울 한복판에 맥아더 동상을

등록 2005-09-30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맥아더는 두 가지 거짓말(!)을 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왠지 멋있게 들리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법칙을 거스른 말입니다. 그는 1964년에 눈을 감았습니다. 또 있습니다. “노병은 사라질 뿐이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인천 자유공원 꼭대기에 우뚝 서 서해바다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죽었으되 사라지지 않은 맥아더. 말장난이겠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죽봉을 든 시위대가 전투경찰과 육박전을 벌입니다. 일당을 받고 재개발 지역에 뛰어든 철거용역 업체 직원들도 아닌데, 그들은 온몸을 던집니다. 남한 땅에서 맥아더 동상이 끌어내려지야 한다는 신념이 비타협적입니다.

맥아더 동상에 관한 한 <한겨레21>의 책임이 큽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언론매체였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2002년 5월9일치로 발행된 <한겨레21> 제407호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꼭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홍구 교수는 이 칼럼에서 임진왜란 때 평양에서 왜구를 격파한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맥아더를 재미있게 비교해놓았습니다. 맥아더 생전에 건립된 그의 동상이 왜 청산해야 할 주권국가의 흉물인지 머리에 쏙 들어옵니다.

그러나 쉽게 ‘맥아더 철거반원’들의 손을 들어주지는 못하겠습니다. 과연 철거만이 유일한 대안인지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논란조차 한국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폭력시위 장면이 연출되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혁’ 구도로 몰기 좋아하는 보수 언론들에게 빌미를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맥아더에 대한 비판적 흐름이 한국 사회에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유익한 일입니다.

광고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인 9월15일이 꽤 지났지만, 보수 언론들은 쉬지도 않습니다. 각종 칼럼을 통해 독자에게 준엄한 훈계를 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논지입니다. “맥아더가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 줄 아느냐, 장군님의 영명한 작전이 없었으면 네까짓 게 오늘 존재했겠느냐.” 낙동강에서 뒤집어질 뻔했던 대한민국이 인천상륙을 통해 ‘9회초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는 ‘표면적’ 사실 하나에 그들은 목맸습니다. ‘9회말 뒷이야기’따위의 ‘이면’에 대해선 모른 척 합니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런 글을 읽노라면 대한민국 독자들을 바보머저리 취급한다는 기분까지 듭니다.

<한겨레21>은 철거보다는 이전쪽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이전 장소는 열려 있습니다. 인천의 시민단체들은 먼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제시합니다. 한국 전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도 괜찮습니다. 보수단체들이 이전에 동의한다면, 결코 손해날 일이 아닙니다. 이왕 이전하는 거, 서울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로 보내자고 우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림합성도 해보았습니다(사진). 맥아더가 이순신보다 빠질 게 있습니까? 외국인 차별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청와대를 등지고 서울의 중앙에 선 맥아더를 상상해봅니다만, 피식 웃음만 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