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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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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음’에 대하여

등록 2005-08-25 00:00 수정 2020-05-02 04:24

책상머리에 ‘극기’라 써붙이고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나
X파일 녹취록의 그 ‘K1’을 들으며 학교 교훈 ‘자유인’을 생각하다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중학교 때 나는 당시 유행을 따라 책상머리에 큼지막하게 ‘극기’(克己)라고 써붙여놓았다. 물론 한자로 썼는데 그래야 제 맛이 난다는 겉멋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겉멋은 ‘극기’라고 써붙이면서 “못난 놈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대신 남과 경쟁한다”는 의미까지 부여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극기’는 실상 남과 경쟁하여 승리하기 위한 각오를 다지는 표현이었다.

마름이 되려고 공부하십니까?

그렇게 책상머리에 ‘극기’라고 써붙여놓았지만, 나는 신통치 못했고 계속 중간에서 맴돈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직은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었고 경쟁도 요즘처럼 치열하지 않았기에 나 같은 학생도 그 학교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교훈이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었다.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라…. 그러나 나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석차를 올려야 한다는 일상적 요구에 매몰돼 있었지,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을 가슴에 새기겠다는 염은 애당초 없었다. 나는 자유인의 진정한 의미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남부럽지 않은 학교에 다닌다는 우쭐함이 기본이었고 장래가 촉망된다는 주위의 시선 속에 엘리트 의식이 형성되었고 남다른 출세를 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을 뿐이다.

그렇게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특출하진 못했어도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이라 할 수 있다. 그 뒤 우연적 사건과 일탈,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에 이르렀는데, 지금 새삼스럽게 중학교 때 어줍지 않게 책상머리에 붙여놓았던 ‘극기’와 고등학교 교훈의 하나였던 ‘자유인’을 돌이키게 된 이유 중엔 삼성 X파일 녹취록에 등장하는 ‘K1’이 바로 그 학교라는 점도 있다.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있어요. K1들도….”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해서….”

떡값 줄 대상을 하나하나 챙기는 화자들의 대화 내용을 보면서 이 땅에서 출세한다는 것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된 것이다.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빡세게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긍극적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삼성 왕국의 마름이 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청소년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학업에 정진한다는 의미는 지배계급이 설정한 평가기준에 잘 따른다는 것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지배계급의 충실한 마름이 되어 그 하부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설정한 평가기준에 따르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 난- 앞으로는 그럴 가능성조차 더욱 없어지겠지만- 사람은 ‘개천 사람들’을 대변할 수 없고 지배층의 요구에 순응하는 조건으로만 출세할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씨는 8·15 특별사면에서도 제외된 채 3년8개월 징역을 살아야 한다. 그가 저지른 죄라곤 무소불위의 삼성 왕국에 맞서 투쟁한 것밖에 없지만, 검찰·사법·정치·언론권력 중 그를 대변해줄 ‘힘센’ 사람이 이 사회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 사회 곳곳에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지만, 여기서 함께 짚고 싶은 얘기는 그렇게 근엄한 지위에 오른 인물들의 보잘것없음에 대해서다.

보잘것없음이 교육자본을 통해 성공한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면 이 사회는 비참할 정도로 보잘것없을 수밖에 없다.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검사들은 국가의 엘리트들이다. 법의 정의든 사회 정의든 정의의 파수꾼이 되는 게 아니라 삼성 왕국의 경비견이 되는 일을 서슴지 않는 엘리트들은 소우주라는 인간이 어떻게 보잘것없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보잘것없음조차 부끄러워할 줄 모를 정도로 보잘것없다니…. 그것이 ‘극기’나 ‘자유인’의 개념을 찾을 수 없는 이 땅의 사회귀족들의 모습이다.

자신까지 속이면서 살게 될 위험

다시 말해, 이 사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노블레스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앞으로 이렇게 바뀌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스로 보잘것없으려면 출세하라.’ 본디 마름이 뜻하는 바가 보잘것없음이다. 한번밖에 오지 않는 소중한 삶을 기존 체제에 빌붙어 그것이 허용해주는 기름진 생활에 자족하며 환호하라. 사십대가 되면 지금까지 삶을 되돌아보면서 정리하라고 했다. 그래서 사십대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도 있지만, 이 사회에서는 보잘것없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마지막 악수를 두는 때가 사십대 이후까지 이어진다.

조직 안에서 개인은 외롭다. 조직에 맞서기엔 개인은 힘에 부치고 조직에서 결국 스스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삶의 진정성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나 홀로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사회라 하지만, 그들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살았던 삶을 솔직히 드러낼 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 성찰을 하지 않을 때 자신까지 속이면서 살게 될 위험에 처한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란, 또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란 결국 기존 체제의 마름이 되는 길에 지나지 않음을 간파하면서도, 그러한 보잘것없는 사회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 또한 그러한 경쟁에서 이겨야만 길이 열린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 도정에서 끊임없이 자기 성찰과 진정한 자유인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 사회가 조건지운 보잘것없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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