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승훈 인턴기자 painbird76@nate.com
‘애마부인’ 안소영이 돌아왔다. 1995년 영화 출연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어느새 누드집을 들고 돌아온 누이’에게 보여준 누리꾼들의 화답은 ‘후끈’했다. 지난주 그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인기 검색어 1~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어떤 배우들과 대적해도 자신 있다” “이효리가 왜 섹시한지 잘 모르겠다” “나보다 가슴 큰 배우 못 봤다”는 등 그의 호기어린 발언을 둘러싸고 온라인상에선 말들이 무성했다. 젊은 누리꾼들은 “아주머니가 웬 주책?”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연로한 누리꾼들은 “니들이 안소영을 알아?”라며 왕년의 그를 추억했다. 그러나 이런 ‘세대차’를 뛰어넘어, 안소영의 복귀는 중년의 여배우가 옷을 벗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리꾼들의 관심을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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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이후 태어난 누리꾼들들에게 ‘애마부인’ 안소영은 분명 한물간 아줌마일 터이다. 그러나 80년대에 청·장년기를 관통한 이들에게 그는 여전히 관능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82년 2월 개봉한 <애마부인>은 유례를 찾기 힘든 4개월간의 장기 상영과, 지금의 100만명과 맞먹는 관람객 31만명의 흥행성적을 거뒀다. “개봉 첫날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극장 유리창이 깨졌다”는 서울극장 관계자의 회고는 당시의 애마 열풍을 짐작하게 한다.
<애마부인>의 대박으로 그해 제작된 거의 모든 한국 영화는 에로물로 채워졌다. 1편의 대박 이후 11명의 각기 다른 ‘부인들’이 말을 탔지만, 대중들은 안소영의 ‘애마’만을 기억했다. 80년대 그는 ‘밤의 여왕’이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은 82년, 일련의 유화정책을 실시했다. 애마부인은 이런 시대가 만들어낸 캐릭터였다. 당시 검열제도는 정치적 표현은 철저히 금압하면서 성적 표현은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사내들은 애마와 말 달리며 출구 없는 시대를 도피했다.
하드코어 포르노물이 범람하는 요즘, <애마부인>은 유치한 에로물인지 모른다. 군살 없는 젊은 몸들의 누드 열풍 앞에서 40대 후반의 벗은 몸은 하나의 해프닝일 수도 있다. 세월 앞에 변한 건 부인의 몸만이 아니다. 80년대 <애마부인>에는 상업적 배후와 함께 정치적 배후가 숨어 있었지만, 20여년 뒤 누드집의 배후엔 그 중 하나만 숨어 있다. 현재의 알몸으로 옛 추억의 상업화에 성공한다면 마케팅 교과서는 머잖아 개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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