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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파업을 선동함 | 김신명숙

등록 2005-06-16 00:00 수정 2020-05-02 04:24

▣ 김신명숙/ 작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주는 밥’이라는 답에 ‘맞다 맞아’ 웃음을 터뜨린다면 그는 주부다. 세끼 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끝도 없이 이어지며 반복되는 집안일이 마침내 자신의 영혼을 좀먹는 것은 아닌지 때로 불안하기도 한 주부들. 그런 그들에게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자며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은 어떻게 들렸을까?

집안일 하느니 감옥 가겠다?

“남편 수입이 좀 늘어나겠군요.” 내가 아는 한 주부의 냉소적 반응이었다. 그는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꼭 일을 하겠다며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다. 여대생들에게 ‘일은 필수, 결혼은 선택’이 된 지 이미 오래고 대다수 전업주부들도 기회만 기다리며 취업을 벼르는 현실에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운운’은 어쩐지 ‘원님 지나간 뒤에 나발 부는 격’으로 보인다. 이미 여자들은 루비콘강을 건너버렸다. 다시 부엌 구석으로 돌아가려는 여자는 이미 희귀종이다. 그런데 남편 소득에 대한 감세 혜택이라니. 발바닥 가려운데 신발 밑창 긁어주는 만큼의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자기들 덕에 전업주부들이 좀 기를 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자기 당에 표도 찍고 애라도 하나 더 낳지 않을까 은근슬쩍 기대하는 모양인데 꿈 깨시라! 주부도 직업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은 곧 없어질 직업이다. 부엌데기, 솥뚜껑 운전사라는 비칭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혼자 고립돼 일하고, 해도 해도 티가 안 나며, 희생만 요구하는 뒷바라지 노동을 누가 전담하려 할 것인가? 차라리 감옥이 낫지.

에이, 과장이 심하다고? 지난달 독일에서는 한 주부가 ‘게으른 남편의 도움 없이 세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는 것에 지쳤다’며 주차위반 벌금을 내는 대신 ‘편히’ 쉬기 위해 3개월간의 감옥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도 없어질 것이다. 게으른 남편들이 대오각성해 가사분담에 나서서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에 로봇이 가사노동의 상당 부분을 담당해줄 것이고 서비스 산업의 발전으로 각종 가사 서비스들이 등장할 것이다. 몇달 전 출간된 <미래예측 리포트>에 따르면 2050년에는 핵가족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독신생활이 부상하고 동거나 일시적인 합의거주, 주말부부 등이 보편화된다니 전업주부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지는 셈이다.

미래는 그렇다 치고 당장 수백만명에 이르는 전업주부들의 가사노동 문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 가치가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연간 총재화와 서비스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가사노동이, 사회적으로는 철저히 은폐돼 ‘노는 일’로 치부되는 데 대해 ‘증오와 분노’를 느껴왔던 나로서는 가사노동의 경제사회적 가치를 드러내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졸렬하고 시대착오적인 소득세법 개정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졸렬하고 시대착오적인 소득세법 개정

있다. 최소 한달이라도 전국의 여성들이 가사노동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모르는 비밀인데 가사노동은 하면 티가 나지 않고 안 해야 그 존재가 비로소 드러난다. 모든 가사노동이 멈췄을 때 비로소 이 사회와 남자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엄청난 노동인가를 뼈저리게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사노동을 ‘알게’ 될 때 제대로 된 해법의 실마리도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애절한 콧소리로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불러댔던 가수 심수봉씨는 노래 못지않게 가사노동도 열심히 해왔다는데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 여자들이 속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사랑밖에 몰라서는 속임 당하기 십상이다. 파업 정도야 감옥행보다는 훨씬 쉽지 않은가?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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