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너무 재미없어요. 그렇게밖에 못 만듭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호통이 들려왔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아침의 일입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받은 한통의 전화에 얽힌 해프닝을 소개합니다. 그는 편집장을 찾은 뒤 다짜고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고는 “정말 지면이 한심하다”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며 계속 기를 죽였습니다. <한겨레21>에는 ‘개성 있는’ 독자들의 전화가 자주 걸려오는 편입니다. 아무리 심한 말씀을 하셔도 으레 그러려니 받아넘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누구시냐”고 묻자 “공인회계사”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구독을 끊겠다”는 말에 이어 “동료 회계사들에게도 구독 중단을 권유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딱히 대꾸할 멘트가 없어, 벌 받는 학생처럼 듣기만 했습니다.
본래 이번 표지이야기는 지난주에 실릴 예정이었습니다. 기사를 다 완성했지만, 사법개혁이라는 현안에 밀려 한주 연기되는 곡절을 겪었습니다. 회계사들을 대상으로 취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돌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주에 회계사를 표지로 다룬 <한겨레21>이 발행될 거라는…. 그걸 입수한 회계사 한분이 ‘앙심’을 품고 아침부터 전화를 건 걸까요?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순전히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쿨하게, 어느 독자의 따끔한 충고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한데 조금 찜찜합니다. 자칭 회계사라는 분의 전화는, 표지이야기를 준비하는 내내 묘한 울림을 안겨주었던 게 사실입니다.
회계사나 세무사들이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탈세 과정에 개입할 개연성은 높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세무대리인들을 ‘탈세의 배후’로 모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양식을 지키는 회계사와 세무사들이 더 많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들은 ‘갑과 을’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대부분 ‘을’에 속하기도 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에 저항하기 힘든 처지입니다. 본문 내용을 읽어보면 그 딜레마가 잘 드러납니다.
솔직히 세금을 곧이 곧대로 내고 싶은 납세자는 없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한겨레신문사도 탈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2001년 7월에 있었던 언론사 세무조사를 기억하십니까? 당시 ‘조중동’만 세무조사를 받은 게 아닙니다. 한겨레도 받았습니다. 조선일보사가 864억원, 중앙일보사가 850억원, 동아일보사가 827억원을 추징당할 때, 한겨레도 11억6576만원을 내야 했습니다. <한겨레21> 가족들도 가끔 즐겨찾는 신문사 인근의 삼겹살집 사장님은 당시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갑자기 국세청 요원 2명이 들이닥쳤지. 전표를 무더기로 들이대는 거야. 어느 한 부서에서 한달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처럼 영수증을 만들었더라고…. 내가 직접 작성한 영수증은 별로 없었는데. 그때 아주 혼이 났지.”
우리의 치부를 곰곰히 되새기면서 회계사와 세무사들의 잘못된 관행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기술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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