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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상] 얄미운 사이트를 부탁해

등록 2005-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미영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kimmy@hani.co.kr

며칠 전 개봉한 <주먹이 운다>에서 주인공인 왕년 복싱 스타 태식(최민식)은 도박 빚 등으로 가진 것을 모두 날린 뒤, 생계를 위해 거리의 매 맞는 복서로 나선다. 얄미운 사람에게 폭력을 쓰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대신 맞아주는 것이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사람들도 기꺼이 돈을 내고 합법적(?)으로 주먹을 행사한다.
“온라인에서 얄미운 사이트를 혼내주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누리꾼들이 눈을 번쩍 뜰 소식이 생겼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이트에 화풀이를 대신해주는 홈페이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리꾼들은 쇼핑몰 사기를 당하거나 항의하고 싶은 사이트가 있을 때 게시판에 욕설이나 ‘악플’을 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면, 이제는 이러한 낡은 수단을 벗어던져도 좋다. 자신이 단 악플이나 욕설이 삭제될까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넷디재스터’(www.netdisaster.com)에 접속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화풀이를 할 수 있다. 옛날 방식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누리꾼들은 이 사이트의 효능에 찬사를 보낼지도 모른다.
얄미운 사이트를 공격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넷디재스터’ 사이트에 접속한 뒤 맹폭(?)하고 싶은 사이트 주소를 ‘target’(http:// ) 창 안에 입력한다. 공격의 정도와 횟수는 ‘catastrophe’ 항목의 10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공격 희망 사이트에 돌·미사일·계란·구더기를 던지거나 커피를 쏟을 수도 있고, 아예 사이트를 바다 속에 수장하거나 폭파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공격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도중에 방법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사이버 테러에 해당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 모든 화풀이가 해당 사이트에서 실제로 진행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넷디재스터’ 사이트에서만 가상으로 화풀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대상 사이트에는 전혀 ‘피해’가 없다. 다만, 사이트 공격을 의뢰한 누리꾼들만이 ‘처참하게 망가진’ 사이트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뿐이다.
누리꾼 고유의 정서와 재치가 녹아 있는 이 사이트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야스쿠니 신사 총공격하자” “혼자 놀기의 진수”라는 반응을 보이며, 누리꾼들은 이색 사이트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이들은 ‘넷디재스터’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해 인터넷 종량제 실시를 주장한 KT를 맹공격하거나, 야스쿠니신사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시마네현 등을 주요 공격 대상 목록에 올려놓고 문명의 이기(?)를 만끽하고 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엔지오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이트가 있었다. 플래시 게임 형태로는 부시 대통령의 코털을 뽑는 것도 있었다”며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누리꾼들의 재치나 재미거리 또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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