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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세상] 역사적 리플

등록 2005-03-15 00:00 수정 2020-05-02 04:24

▣ 박종찬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pjc@hani.co.kr

‘댓글, 쪽글, 리플…’ 다 같은 말이다. 게시판 글이나 블로그의 글, 인터넷 기사 말미에도 어김없이 댓글은 주렁주렁 달린다. 댓글은 말에 대한 반응이자, 관심이다. 댓글의 내용은 갖가지다. 동조와 찬사, 비난과 욕설 중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인터넷 세상에서 댓글은 소통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리플을 권장하고, 구걸하는 패러디물도 있다. “제발 답글을 달아달라”는 ‘리플송’도 있다.
인터넷 강국의 현직 대통령도 리플 대열에 합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월18일 국정홍보처에서 운영하는 뉴스 사이트인 국정브리핑(www.news.go.kr)에 전국 공무원들에게 ‘공무원이 혁신 모범 만들어가자’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대통령의 이메일에 대한 반응은 ‘썰렁’했다. 답답한 노 대통령은 22일 오전 자신의 서신 말미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 이 사실이 3월9일 뒤늦게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노 대통령이 보낸 ‘역사적 댓글’의 전문은 이렇다. “여러분들의 의견 잘 보았습니다. 답답한 심정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런데 냉소와 불신, 그 다음은 뭐지요? 방관인가요? 그래도 우리는 뭔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같이 한번 해봅시다.”(2005. 2. 22, 08:13:32)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8건의 댓글에 불과했던 국정브리핑의 해당 기사에는 이틀새 170여건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역사적인 댓글에 나도 동참.”(흠냐리), “이 댓글도 꼭 보셨으면 좋겠다. 하나 더! 이 페이지 영원히 즐겨찾기에 추가할랍니다.”(노랑가득)
누리꾼들은 대통령의 인터넷 댓글로 화제가 된 공간을 ‘인터넷 성지’라고 이름 붙였다.
“대통령님 댓글로 왠지 네티즌의 성지가 될 듯한 -_-;;, 과연 디씨의 성지에 버금갈 것인지;;”(한국인), “노짱님의 댓글 한 방이 정말 눈부시게 찬란한 빛을 쏟아내는군요”(빛), “성지순례 왔습니다”(이은영).
누리꾼들은 대통령의 댓글에 대한 응원뿐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도 해석했다. ‘탈권위’는 “과거에는 상상만 했던 일이었는데 대통령이 직접 인터넷에서 댓글을 다는 세상이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런 사소한 일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모든 고정관념과 패러다임이 하나씩 바뀔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JWT’는 “이것이 변화이고, 민주주의”라며 “노무현, 당신을 찍은 것을 후회한 적도 가끔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내 손가락에 축복을 보내고 싶다”고 감격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전국 곳곳에 휘호와 현판으로 ‘통치의 흔적’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상공간인 인터넷에 댓글 한줄로 원탁 토론에 참여했다.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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