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춘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jona@hani.co.kr
지난 3월1일 낮 12시50분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부근. 한 인터넷 매체는 이날 이곳의 풍경을 이렇게 전했다.
“젊은이 100여명이 태극기로 도안된 옷을 입거나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깡충깡충 뛰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이들의 행사, 일명 ‘태극기 몹’은 집단 팔굽혀펴기로 시작됐다. 행인들은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어 그룹 NRG의 댄스곡 <대한건아 만세>에 맞춰 일명 ‘바숨댄스’(바르게 숨쉬는 댄스)를 선보이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인터넷 카페 ‘고구려 지킴이’ 회원들이 연 엽기발랄한 3·1절 퍼포먼스 행사였다.
네티즌들에겐 인터넷이 ‘광장’이다. 회합하고 집회하고 담론을 생산하는 공간이 사이버 세상이다. 그것이 그들 나름의 ‘전통’이다.
하지만 그들도 진짜 ‘전통의 광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골방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행위를 다해온 인터넷 폐인들이 처음 오프라인 광장으로 나온 건 지난해 봄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 직후다. 그들에게 인터넷은 ‘모의’의 공간이었을 뿐, 실제 회합과 집회와 담론 생산은 물리적 공간인 서울 광화문에서 이뤄졌다.
언론도 그들을 주목했다. 그들의 정치적 ‘커밍아웃’도 관심거리였지만, ‘개죽이 깃발’과 같은 비전통적인 표현방식은 더없이 좋은 기사 소재였던 것이다. 네티즌들에게 오프라인 광장은 인터넷의 현실 축소판이다. 그들은 상상력 하나로 사이버 공간에서 구현했던 세계를 안간힘을 다해 오프라인 공간에도 옮겨놓는다. 그래서 그들의 집회는 언제나 ‘튄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3·1절 단골 집회장소로 선점해온 극우보수단체들은 올 3·1절에도 예외 없이 시청 앞에 모여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흔들었다. 북파공작원 출신들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닭의 생목을 따며 주한 일본대사의 “다케시마는 일본 땅” 발언을 섬뜩하게 규탄했다. 성조기든 닭모가지든, 이들은 형식상의 ‘비장미’로 3·1절 행사의 전통성을 계승하는 듯했다.
네티즌들이 발랄한 풍자를 통해 두 나라의 대등한 호혜적 미래 관계를 제시했다면 극우보수단체는 과거사에 얽매인 모순된 현실인식을 정제되지 않은 한풀이로 드러냈다. 네티즌들은 무한대의 사이버 광장에서 상상력을 키워 오프라인 광장으로 진출하지만 극우보수단체는 오프라인의 연병장에서 제식훈련을 받고 내무반으로 돌아간다. 일본이라면 어느 쪽을 더 두려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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