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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상] 기자와 유혹

등록 2005-01-13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미영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kimmy@hani.co.kr

‘기자로서의 양심’은 얼마나 지키기 힘든 것일까. ‘명품 가방’의 유혹은 어느 정도일까.
문화방송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이하 사실은)의 이상호 기자가 자신의 홈페이지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www.leesangho.com)에 올린 글 ‘아내와 가방’이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이상호 기자는 한 민영방송사가 물 캠페인을 실시한 뒤 모기업인 ㅌ사의 하수처리장 사업이 급성장했다는 의혹을 고발하는 보도를 지난해 말 내보낸 바 있다. 이 기자가 올린 글에는 지난해 말 ‘ㅌ’사 사장에게서 100만원 상당의 구치 가방을 선물받은 뒤 되돌려주기까지 기자와 가장으로서의 고뇌와 자괴감이 녹아 있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해 12월24일께 방송사 선배가 술 한잔 하자고 전화를 해와, 약속 장소인 최고급 레스토랑에 나가보니, 또 다른 방송사 선배와 건설회사 ㅌ사 사장이 함께 나와 있었다. 구석에 나란히 놓여 있던 쇼핑백 3개를 봤을 때 ‘조금 있으면 저것이 내게 전달되겠지’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아내에게 변변한 선물 한번 해준 적이 없는” 그는 아내에게 선물을 건네긴 했지만 ‘명품 가방’에 ‘기자의 양심’을 팔 수 없어 고민 끝에 같은달 27일 ‘ㅌ사’에서 받은 ‘명품 가방’을 되돌려보냈다. 이 글은 최근 슬그머니 사라졌지만 여러 블로그로 옮겨졌다. 네티즌들은 이 기자의 용기 있는(?) 행동을 격려하는가 하면, 자본과 언론이 빚어낸 한편의 우울한 코미디에 냉소를 보냈다.
<인터넷 한겨레> 한토마의 네티즌 ‘이풍진세상’은 “이 기자의 글이 공감을 부르는 것은 사회적 비리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인간적 고뇌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유혹이 많은데, 글의 고민이 심금을 울려 퍽 많이 울었다”는 글을 남겼다.
반면 이 기자를 질책하는 글도 눈에 띈다. 상대적으로 ‘후한’ 연봉을 받는 방송사 기자가 ‘명품 가방’에 양심이 흔들렸다는 점 때문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당시 ‘명품 가방’을 함께 받았던 ‘사실은’의 신강균 기자와 강성주 문화방송 보도국장이 7일 보직을 사퇴했다. 문화방송은 또 7일 방송을 취소하고 대체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했다. 문화방송은 미국 출장 중인 이상호 기자가 귀국하는 대로 추가 진상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 기자의 고백글은 “이상호 기자와 같은 양심고백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언론사 기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 누구도 양심선언을 한 적이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유유상종이 얼마나 활개치고 있을지 짐작할 만하다. 뭉클 씁쓸한 기분이 든다”(옴부즈맨)는 한 네티즌의 글처럼 우리 사회에서 기자의 역할과 책임, 생활인으로서의 고뇌를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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