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락/ 소설가
“에비, 간첩이 나타났다!”
60년대 말,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두고 시인 김수영과 아무개 평론가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까지를 떠올릴 필요도 없이, ‘간첩(단) 출현’이라는 늬우스 한마디에, 사람들은 ‘에비’에 겁먹은 아해들마냥 피란 보따리를 챙기기 위해서 싸전으로 라면가게로 허둥대며 내달리던 시절이 있었겠다! 그 늬우스의 뒤풀이 코스는 ‘삽겹살집-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요즘 직장인들의 회식 코스만큼이나 안 봐도 통박이 훤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이어지는 키 작은 대통령의 ‘뒷담화’는 필수였고, 서울운동장에서는 머리띠 두른 사람들이 몰려나와 뉘 울대가 더 높은지 시합을 했다.
그러나 누구의 ‘친애’(親愛)도 받지 못했던 시골구석의 ‘궁민’(窮民) 여러분들은 ‘간첩 검거’라는 그 늬우스에 ‘쩝!’ 입맛부터 다셨다. 간첩을 신고한 사람에게 준다는 ‘상금 20만원과 보로금 50만원’이면 요즘의 로또가 부럽지 않을 금액이 아니었던가.
자고로 정치인은 국민, 특히 ‘궁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비록 “여의도에 간첩이 나타났다!”는 한바탕의 소동이, 뱀파이어 시리즈에도 꿈쩍 않는 요즘 아이들에게 기껏 두 손으로 얼굴을 찌그러뜨리며 “에비, 무섭지?” 따위를 연출한 꼭두극처럼 돼버렸으되, 그래도 불황에 허덕이는 ‘궁민들’에게 ‘간첩 신고 상금과 보로금’으로 팔자를 고치는 방법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걸 일깨워주었으니 이 얼마나 가상한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의 애민정신(?) 역시 같은 맥락에서 평가해야 옳다. ‘보로금’을 사전에서 찾아보라. ‘국가보안법 위반자를 체포 또는 신고하였을 때 그 압수물에 따라서 상금과 함께 지급하는 돈’이라고 나와 있으니 국가보안법이 사라지면 보로금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서도 영영 사라질 판이다. 그것은 ‘궁민들’로부터 ‘궁민탈출’의 희망을 빼앗는 처사다!
시제품에 대한 품평이 괜찮았으면 대대적인 양산 체제를 갖춰 수출 길도 모색할 수 있었을 텐데(고구려의 광개토왕은 ‘남연’이라는 나라에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천리인’ 10명을 첩자로 활용하도록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째 일 돌아가는 품새가 매끄럽지 않다. 물구나무를 세웠다느니 고춧가루 물을 먹였다느니 따위 공정상(工程上)의 하자를 들고 나오는데다, 광고물 제작을 담당했던 인쇄소 주인마저 ‘불량품’임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판이니. 게다가, 원군이 돼줄 줄 알았던 ‘뉴 라이트’마저 “불량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알쏭달쏭한 말로 김을 빼버리지 않는가(우향우를 할 때는 정확하게 90도만 돌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신삥’ 라이트가 되다 보니 열정만 앞서서 360도를 피잉 돌아버려서 생긴 해프닝이 아닐까?)
엎친 데 덮친다더니 공안(公安…恐案?) 공장의 수장 격인 큰 성님네 동네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 유언(流言)에 비어(蜚語)까지 난무하다 보니 급기야 큰 성님이 “나는 막내아들이 37살”이라는 해명을 해야 했으니 원. 이러다가 혹시 큰 성님이 기자들 앞에 나가서 “내가 당해보니 없는 간첩죄를 뒤집어써야 했던 사람들 심정을 알겠노라…” 어쩌고 하는 성명을 발표해버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하지만 다행히 외부 사정은 좋은 편이다. 미국에서는 부라보콘인지 네오콘인지가 잘 팔리고 있고, 일본의 보수도 신장개업을 해서 쇳소리를 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도 법사위 문을 걸어잠그고 도시락을 주문한다. “그 뻘건색 고추장은 빼고 갖고 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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