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찬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pjc@hani.co.kr
“파렴치한 성폭행범 응징하러 밀양 원정대를 조직하자.” “경찰의 피해자 보호 소홀을 규탄하고 가해자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이자.”
경남 밀양에서 터진 중·고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놓고 인터넷은 부글부글 끓었다. 울산 남부경찰서가 12월8일 여중·고생 5명을 집단 성폭행한 밀양 지역 고교생 41명 가운데 3명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흥분한 네티즌들은 수사를 맡은 울산 남부경찰서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 언론사 홈페이지,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토론 게시판을 근거지로 집단 항의를 벌였다.
네티즌들은 가해 혐의를 받고 있는 학생들의 소속 학교와 실명은 물론 미니홈피에 올랐던 사진과 휴대전화 번호까지 마구 퍼날랐다. 심지어 가해 혐의 학생들의 누나나 친구 등 주변 인물들의 자잘한 일상사까지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인권 침해’라는 우려가 높았다. 하지만 문제의 사진과 글은 ‘밀양 강간범들을 조심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세상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졌다. 사진 가운데는 혐의를 받고 있는 고등학생들 중 20여명의 얼굴 사진이 선명했다. 그러나 급속하게 퍼진 사진을 가해 혐의 학생 41명의 이름과 대조했더니 절반은 다른 사람으로 밝혀졌다. 엉뚱한 제3의 피해자를 만드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온라인판 ‘밀양 습격 사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하던 울산 남부경찰서의 김아무개 경장이 피해 여학생들에게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너희들이) 밀양 물 다 흐려놨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번에는 지방경찰청, 경찰청, 청와대 홈페이지에 항의하는 글이 빗발쳤다. 이들 게시판은 “무책임한 경찰관” “경찰청장이 책임지고 옷 벗어라” “전부 구속하라” “가해자 부모에게 살인적 충동을 느낀다”는 등 항의성 글로 폭격을 맞았다.
여론의 압박에 밀린 울산남부서는 10일 홈페이지에 ‘집단 성폭력 사건 수사 사항 및 향후 계획’이라는 사과성 공지를 띄우고 빗발치는 여론에 무릎을 꿇었다.
온라인에서 분노한 네티즌들의 오프라인 촛불시위도 이어졌다. ‘밀양연합 강력처벌 카페’(cafe.naver.com/antimy) 소속의 네티즌과 시민 150여명은 11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촛불과 피켓을 들고 △폭언한 경찰관 징계 △피해자를 협박한 피의자 부모 질타 △경찰의 수사 관행 개선 등을 요구했다.
토론방인 한토마에서 필명 ‘이강산’은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일한 대응을 보면서 네티즌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함축적으로 지적했다. “가부장적 정서와 남존여비의 낡은 사고가 잔존한 나라에서 강간 같은 중범죄가 가볍게 처리되는 것은 여성들의 피해만 키울 뿐이다. 남성들의 의식 전환뿐 아니라 강간 사건에 대한 법적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온라인 여론의 집요함과 부작용을 밀양 성폭행 사건은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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