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부르르’로 재미봤던 자들, 지금 ‘부르르’ 떨고 있다. 성인용품 이야기가 아니다. ‘벨’ 없이 ‘진동’으로만 부르르 울리게 해놓고 수능시험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다. 휴대폰 화면에 찍히는 ‘아라비아’ 숫자 정답에 “아싸라비아” 환호했겠지만, 지금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요술램프가 나타나기를 처량하게 빌지도 모른다. “램프야 램프야, 제발 내가 받은 문자+숫자메시지 기록을 영원히 삭제해주렴.”
디지털 세상의 특징 중 하나는 삭제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늦은 밤 술에 취한 상태로 어느 선배한테 “당신은 너무 좋은 놈이야”라며 맘에도 없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별짓을 다 해도 기록은 남는다. 내가 보낸메시지함을 비우고, 선배 역시 받은 메시지를 지운다 해도 경찰은 이동통신사의 협조를 얻어 그 메시지를 열람할 수 있다. 전자우편도 그렇다. 한번 ‘보내기’ 단추를 누르면 끝이다. 충분한 자기 검열을 거치지 않은 메일에 상처받는 이들이 한둘인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 휴대폰 개발자들에게 제안한다. 휴대폰과 전자우편 프로그램에 ‘찢기’ 기능을 추가해달라. 어린 시절 편지지를 찢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밤새 써놓고 다음날 아침 한번 더 읽어보다가 낯이 뜨거워져 휴지통에 찢어버리던 기억. 상대방이 열어보기 전, 보낸 메시지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사고’친 뒤에도 땜빵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고’. 연구자들이여, 디지털 세계의 ‘사후 피임약’을 개발해다오!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질리도록 못 지우게 만든 이들도 있다. 얼마 전 야시시한 스팸메일을 잘못 건드렸다가 골치 아픈 일을 당했다. 인터넷 시작 페이지로 계속 뜨는 거였다. 게다가 즐겨찾기 막대의 꼬리에까지 뻔뻔스럽게 달라붙었다. 수십 차례 삭제를 했지만, 놈은 구질구질하게 생존하며 ‘휴지통’을 비웃었다. 웃긴 것은 그 인터넷 사이트의 작은 제목이었다. “무삭제판!” 삭제 안한 상태로 보여줄 테니, 삭제할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국가보안법 ‘무삭제판’도 삭제당할 운명 앞에서 거세게 저항 중이다. 국회 법사위원회에 상정되려던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한나라당의 거친 반대로 물거품됐다가 편법으로 상정됐다. 삭제하려고 마우스를 갖다댈 때마다 오히려 ‘즐겨찾기’에 억지로 달라붙는 악성 스팸 사이트를 연상시킨다. 결국 네티즌들은 국가보안법 삭제를 반대하는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홈페이지를 ‘즐겨찾기’해 서버를 다운시켰다. 이번 일을 계기로 네티즌들은 새로운 ‘찾기’ 항목을 주소창에 띄워놓기 바란다. 혼내줘야 할 홈페이지 주소들만 따로 모아놓아 바로 들어가는… 졸라찾기! 징하게찾기!! 국보법 폐지안 ‘상정’이 모든 국회의원의 ‘인지상정’이 될 때까지….
공인중개사 시험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기초가 튼튼한 사람만이 합격한다. 불멸의 신화가 된 부동산업계의 입문서를 읽어보셨는가. 대하소설 …. 소설가 박경리는 를 팔아 자신의 ‘토지’를 재생산한 것은 물론, 후배들의 창작공간을 위한 ‘토지’(원주 토지문화관)까지 무료로 불하하지 않았던가. 최근 전두환씨의 ‘숨겨놓은 서울 강남 토지’ 사건을 접하며 책꽂이의 를 꺼내 들어본다. 현실은, 소설 속의 대지주 최참판이 “나의 전재산은 쌀 한말”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코미디가 아닌가. 한때 ‘토지소유’에 관한 한 ‘대장’이었다가 이제는 ‘토지소유대장’에서 이름이 삭제당할 위기에 처한 ‘지주 전두환’을 위로하고 싶다. “수구세력 안에서의 정신적 ‘지주-소작 관계’로 만족하라”고.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내란 세력 선동 맞서 민주주의 지키자”…20만 시민 다시 광장에
‘내란 옹호’ 영 김 미 하원의원에 “전광훈 목사와 관계 밝혀라”
경호처, ‘김건희 라인’ 지휘부로 체포 저지 나설 듯…“사병이냐” 내부 불만
청소년들도 국힘 해체 시위 “백골단 사태에 나치 친위대 떠올라”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저장 안돼”
‘적반하장’ 권성동 “한남동서 유혈 충돌하면 민주당 책임”
연봉 지키려는 류희림, 직원과 대치…경찰 불러 4시간만에 ‘탈출’
김민전에 “잠자는 백골공주” 비판 확산…본회의장서 또 쿨쿨
우리는 ‘멍청함’과 싸워야 한다 [왜냐면]
윤석열 지지자들 “좌파에 다 넘어가” “반국가세력 역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