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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전공노와 쇼트트랙, 주사파 유혹

등록 2004-11-19 00:00 수정 2020-05-03 04:23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야 이 밥통 같은 놈아!”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아마 리콜 명령을 받은 불량 압력밥솥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밥’은 하늘이라 했다. 결국 ‘밥통’이란 하늘을 담는 ‘용기’인 셈인데, 인간의 ‘용기’를 꺾는 단어가 돼버렸다. ‘밥통’보다 더 기분 나쁜 말도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조합원들이 가장 싫어할 다음과 같은 소리다. “야 이 철밥통 같은 놈아.” 그들이 파업을 하자 ‘철밥통’을 넘어 사시사철 ‘보온밥통’이 될 거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국민들의 시선은 ‘찬밥통’에 가깝다. 전공노 조합원들의 반응은 ‘심통’ 부리지 말라는 투다. 답답해서 ‘울화통’이 치민단다. 민주노총은 전공노가 ‘신통방통’ 대견스럽다. 반대편에선 정부와 경찰이 ‘밥통’을 준비한다. 전공노 조합원들의 가슴을 ‘콩콩’ 뛰게 할… 콩밥~통!
보수언론은 ‘전공노’를 ‘전공투’ 취급한다. 는 지난 11월12일 “전공노가 조합원들에게 주체사상을 교육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감히 ‘1면 머리’로 올렸다. ‘뉴스 밸류’를 몰라서 그랬을까, ‘뉴스 벨로’ 없어서 그랬을까. ‘주사’를 박멸하는 ‘예방주사’를 자부한다지만, 사회면 ‘머리’라면 몰라도 1면 ‘머리’는 너무했다. 정말… 머리 나빠요!
전공노는 “의도적 왜곡 보도”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촌스럽다. 까놓고 말해보자. 아니긴 뭐가 아닌가? 그 보도가 거짓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나는 크리스천들이 코란이나 불경을, 무슬림들이 성경이나 공자 말씀을 읽어야 톨레랑스가 넘치는 명랑사회가 빨리 올 거라 믿는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주체사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들은 새마을운동 정신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주체사상에 따르면 사람은 세 가지 본성을 갖고 있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이거 무지 중요하다. 그 세 가지를 확실히 실천한다면 ‘밥통’처럼 멍청할 리 없고 ‘철밥통’처럼 무사안일할 수 없다. 특히 6급 ‘주사’들은 ‘주사파’의 핵심 리더가 돼야 한다. 복지부동이 웬 말이냐! ‘주체’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의 에너지는 ‘주체’할 수 없으리라!!
“날 갈아줘.” 섬뜩한 호소다. 자신의 신세를 갈아치우고 싶다는 말인가, 아니면 스케이트 날을 갈아달라는 의미인가. 국가대표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그동안 ‘무차별’ 구타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차별 없다”는 말이 꼭 좋은 게 아니었다. 이라크 팔루자에서도 미군들은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인간들아, 제발 차별 좀 해라!
4당5락이라고 했다. 수능고사를 준비하는 고3 여러분,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입시계의 잠언을 아시는가. 쇼트트랙 선수들은 5당4락을 교육받았을지도 모른다. 다섯대 맞으면 이기고, 네대 맞으면 진다고. ‘Oh, no!’의 비명 속에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엄살을 부렸을지도 모르는 어린 선수들. 국민들은 이제야 “Oh, know”를 외친다. 폭력은 선수들을 ‘주사’의 유혹으로 이끌 수 있다. 목표와 현실, 폭력의 삼각관계 틈에서 방황하다 끝내 약물에 의존할 개연성이 높은 거다. 성적 부진으로 개처럼 맞느니, ‘주사’ 맞고 좋은 성적을 내거나, 적발돼 집에서 쉬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는 반드시 1면 ‘머리’로 보도하라. 선수들 ‘머리’ 때리지 말라고, 스포츠계의 폭력이 ‘주사파’를 양성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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