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연/ 소설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되던 날, 나는 오후에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5분도 안 돼서 껐다.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친구에게 전자편지를 썼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또 다른 전쟁의 4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시는 정확하게 전쟁을 의미합니다. 케리라고 해서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최소한 케리는 팔레스타인을 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지요. 지금 잠자리에 누운 팔레스타인 아이들과 그 아버지들의 머리맡에 공포가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 방금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더 이상 듣기를 원하지 않고, 들을 필요도 없지요.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부숴버린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며칠 전부터 라말라(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행정 도시) 시민들은 이스라엘 극단주의자들로부터 단 두 마디뿐인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라파트 죽었어!’ 내 아내도 그런 전화를 받았지요…. 이스라엘은 우리한테 가자 지구를 떠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게 떠나는 것이라면, 이스라엘이 차라리 머물기를 팔레스타인인들은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모든 건물들을 파괴하고 있으니까요. 아, 부시는 피해자들을 범죄자로, 살인자 샤론을 희생양으로 뒤바꾸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작가의 이메일 답신엔…
팔레스타인 작가 자카리아 모하메드의 답장이다. 이라크 친구는 답장이 없으나, 바그다드 도심에서 미군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행인 열 몇명이 죽거나 다친 현장에서 “이것이 미국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자유냐?”라고 묻던 그도 의견이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종종 전자편지가 안 닿고는 했지만 나는 걱정이 된다.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이라크에 다녀온 김하운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라크 친구들 소식이 끊어지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가슴이 철렁합니다. 제발 살아 있어야 할 텐데…. 그런데 내 친구들이 살아 있다면 다른 이라크인들이 죽었겠지요. 매일 사망자 수가 늘어나니까요.”
이번 미 대통령 선거가 선거권자의 후보자에 대한 선호보다는 다른 후보자를 못 참겠다는 혐오에 의해 결정됐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미국이 혐오하는 건 케리만이 아니다. 미국을 혐오하리라고 추정되는 미국 이외의 세계 전체이다. 그리고 그 추정의 근거는 미국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유, 민주주의, 정의, 부시가 쏟아내는 말들의 실제 내용은 증오며 혐오이다. 자카리아 시인의 표현대로, 정확히는 전쟁이다.
부시가 당선된 중요한 이유가 도덕성이라는 신문기사를 보았을 때, 나는 말들이 현실에서 분리되어 제멋대로 날아다닌다고 느꼈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부시 당선을 기뻐한 정권들은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경제 지상주의이면서 국수주의이고, 외부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부의 갈등을 강압한다. 민족 또는 국가, 이런 정권일수록 근사한 단어들을 동원한다. 나는 우리나라 보수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민생, 좌파, 정체성 따위의 추상적인 말들만 되뇐다. 살아야 할 민초가 누구이며, 무엇이 좌파이고, 정체성은 언제 어떻게 결정되는가?
선동 정치는 전망이 없기 때문에 기반을 과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부시는 ‘팍스 아메리카나’, 고이즈미는 ‘일본이 세계로 뻗어나갔던 50∼60년대’, 우리나라 보수파는 ‘70년대 경제 개발 시기’로 회귀하자고 주장한다. 문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은 이라크에서만 터지는 것도 아니고, 북한에서 안 터진다고 해도 이미 모든 나라가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아랍과 아프리카를 비롯해 머리맡에 공포가 도사리고 흉흉한 소문에 시달리는 인구가 더 많은 이 세계는 9·11이나 이라크 전쟁, 11월3일 이전과 또 다르다. 이라크에 파병했으니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일이, 부시한테 충성했으니 잘됐다고 입을 가리고 웃을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 사태를 야기하였으되, 책임지지는 못할 것이다. 이라크는 명백히 통제 불능이다. 현실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현실론은 푸념이지 대비책이 아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전 유대 화가들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하늘을 기괴한 형상체들, 선동과 조작의 문구들이 까맣게 뒤덮었다. 지금 전세계의 하늘이 그렇다. 그게 재앙의 조짐임을 아는 것이 현실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