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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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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등록 2004-10-15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흔히 한국 사회를 역동적인 사회라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역동적인 것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 것과는 분명 다른 현상이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살아가고 있고 진보와 보수, 지배와 종속이 뒤섞이게 마련인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갈등이 없을 수야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항상 역동성을 간직하려면 끊임없이 만들어졌다가 응어리만 남긴 채 사라지는 숱한 갈등들을 슬기롭게 해소하고 사회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갈등을 화합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역동적인 사회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의 과거사 청산, 행정수도 이전, 고교등급제 적용에 이어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다. 지난 9월23일 시행에 들어간 성매매 특별법을 둘러싼 대립과 반목이 그것이다. 성을 사고팔거나 알선하는 모든 행위를 처벌하는 게 특별법의 뼈대다. 이전에도 윤락행위 방지법과 같은 단속과 처벌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빚어지고 있는 대립과 반목은 당국의 강력한 법 집행 의지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확고한 탓이다. 전국의 모든 집창촌과 유흥가가 불을 끄고 납작 엎드려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성매매 업소의 업주와 여성 종사자들은 생존권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서 정부 당국과 ‘대립’하고 있고, 일반 국민들은 성매매 행위가 이제는 근절돼야 할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강경론과,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묵인돼오던 것을 단칼에 도려내려는 것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라는 온건론 사이에서 ‘반목’하고 있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정부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봉합에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치사회를 지향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법 집행에 앞서 충분한 유예기간과 부작용 방지를 위한 치밀한 사전검토가 있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성매매를 극히 일부에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뤄지는 음성적인 불법거래로 치부하며 갈등 극복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집창촌 업주와 종사자들을 범죄인 취급하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것부터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지난 2000년 ‘원조교제’가 전염병처럼 번져 큰 사회 문제가 됐을 때, 원조교제를 비롯한 각종 성문화와 섹스산업이 일본으로부터 한반도로 건너오고 있음을 경고(?)한 문화평론가 김지룡씨의 (명진출판 펴냄)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본 생활을 통해 직접 경험한 다양한 성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한국의 성문화와 비교해놓은 것이 눈에 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왜곡된 성문화를 만들어낸 근본 요인이 아무도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에 있다고 본다. 그것이 성에 대한 무수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는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하며 성문화에 대한 솔직한 접근을 당부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제 성매매와 관련된 모든 논의들을 수면 위로 꺼내놓고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 어찌 보면 단순하기까지 한 성매매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과거사 청산 같은 더 복잡하고 뿌리가 깊은 갈등 문제들을 극복해낼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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