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부속건물 화재 자체 진화한 소방실력에 촬영 카메라까지 뺏어 </font>
▣ 글 · 사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1892~1940년)은 예술작품이 풍겨내는 고고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아우라’라고 이름 붙였다. 당시 사진·영화 등 첨단 기술이 결합된 새로운 예술의 등장을 목격한 벤야민은, 아우라는 단 하나의 원본 작품에서만 풍겨나오는 것이므로 복제기술로 만들어지는 사진·영화는 아우라를 가질 수 없다고 보았다. 그의 개념을 따르자면, 오리지널 작품들을 모아놓은 미술관이야말로 아우라의 ‘집합소’인 셈이다. 굳이 미학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 기자 또한 그 절대적인 ‘미술관의 아우라’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마무리 진압 도운 소방관에 오히려 항의
체험의 발단은 9월8일치 사회면에 실린 ‘삼성미술관 부대건물 화재원인 아무도 몰라’란 기사에서 비롯됐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www.leeum.org)의 10월 개관을 앞두고, 이 미술관에 딸려 있는 건물인 삼성 아동교육문화센터에서 불이 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는 것이다. 미술품 애호가이던 고 이병철 회장의 성(姓) ‘리’(LEE)와 ‘뮤지엄’(MUSEUM)의 합성어인 ‘리움’은 이건희 회장의 자택 옆 땅에 연건평 8800평 규모의 복합시설로 지어졌다. 고미술관·현대미술관 2개 동에 아동교육문화센터가 결합된 이곳은 장 누벨·마리오 보타·렘 쿨하스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건축가 3명이 각각 한채씩 설계해 더욱 기대를 모았다. 한마디로 삼성 기업주의 미술 사랑과 미술의 교육적·공익적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소인 셈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불이 났다는 사실은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신문기사와 소방서·경찰서쪽의 취재를 종합한 결과 화재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8월18일 새벽 4시23분께 아동교육문화센터 지하 3층 기계실에서 불이 났고, 미술관쪽은 소방서에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방범업체 에스원 직원들과 삼성119구조단을 동원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미술관 앞을 지나던 이웃 주민이 건물 밖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신고했고, 이에 용산소방서는 불이 난 지 50분 뒤에야 도착해 마무리 진압을 도왔다는 것이다.
‘소방서가 가까이 있는데 왜 진작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라는 소방관의 물음에 미술관쪽은 자체 인력만으로도 불을 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사실 미술관 옆엔 에스원사무실이 맞붙어 있고 에스원 직원들이 대규모로 상주하고 있어 주민 신고만 없었더라면 굳이 수선 떨지 않고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인지, 뒤이어 출동한 경찰도 에스원 직원의 제지로 2시간을 기다려서야 화재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우리 미술관은 사진 찍으면 안 돼요”
사건이 보도되자 삼성미술관쪽의 반응은 뜨거웠다. 담당 소방관 또한 기사가 나간 뒤 삼성쪽으로부터 항의 전화가 빗발쳐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미술관 직원은 취재기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분주히 전화버튼을 눌렀다. 철통경비도 대단했다. 9월9일 아직 공사 중인 미술관 주변을 둘러보다 건물 밖에서 사진을 찍던 기자 또한 에스원 직원에게 붙잡혔다. 2명의 장정들은 디카의 ‘삭제’ 버튼을 누를 때까지 디카를 돌려주지 않았다. 이튿날 미술관쪽에 문의해보니 “세계적 건축가들이 지은 작품이라 ‘초상권’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미술관 관계자는 “혹시 개관 전에 사진이 먼저 공개된다면 윗선에서 9월30일 열릴 간담회에 취재기자가 참석할 수 없도록 조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화재 사건의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수사가 진행 중이나 경찰 또한 원인이 드러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의문의 화재 사건을 취재하며 기자는 알게 됐다. 삼성미술관의 고고하고도 신비로운 아우라는 국보·보물급 문화재들과 한 점당 수억원을 호가하는 콜렉션, 유명한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권력을 능가하는 방범·경비·소방 실력과 철저한 보도 통제를 빼놓는다면 그 독특한 분위기가 어찌 나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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