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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구대빵으로 ‘국보’를 지키다

등록 2004-09-02 00:00 수정 2020-05-03 04:23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청기백기 게임이라는 게 있다. 기계의 명령에 따라 청기와 백기를 ‘적기에’ 올리거나 내려야 이기는 게임이다. 그런데 왜 꼭 청기백기인가. ‘적기’는 안 되는가. 적기백기나 적기청기 게임은 불가능한 걸까. KBS 프로그램 가 실수로 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가 돌 맞는 걸 접한 뒤엔 더욱 그런 궁금증이 든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수준이면 아무 이상 없을 거다. “백기 올려, 적기 내려.” “적기 올리지 말고, 청기 올려.” 적기를 끌어내리자는 거니까…. 반면 “백기 올리지 말고, 적기 올려” 같은 기계음은 위험하다. “적기 게양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꼬투리 잡힐 거다. 국가보안법 제7조 1항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
대한민국 국보 1호는 남대문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온 손님들에게 남대문 백날 보여줘봤자 별로 신기해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름도 비슷한 ‘국보법’을 국보 1호라며 코믹 버전으로 설명해주면 남북 대치 상황이 실감난다면서 재밌어할 거다. 농담 아니다. 국보법은 절대 ‘기스’ 나선 안 될 고려청자 같은 국보급 문화재임이 틀림없다. 헌법재판소의 구대빵 기록이 증명한다. 한때 오대빵으로 피눈물 흘렸던 거스 히딩크도 혀를 찰 구대빵!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 선생님이 뭐 하나 물어볼라치면 저마다 소란스럽게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든다. “여러분, 국보법은 아름다운 국보지요? 맞다고 생각하는 어린이~?” 이런 질문에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저요, 저요” 하며 경쟁적으로 손을 드는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전교생 아홉명이 구대빵으로! 이런 발칙한 아이들은 ‘국가보완법’ 만들어 처벌해야 한다. 국보법 찬양·고무죄! 복도에 나가 손 들고 서 있어!!
‘구공탄’이라는 게 있었다. ‘십구공탄’의 준말로, 정확한 구멍 숫자는 19개였다. 1974년 이후 생산이 중단된 추억의 구식연탄. 이름대로, 구멍이 그냥 9개라 치자. 나는 왠지 헌법재판소의 ‘어린이’들이 구공탄 같다. 열린 사회로 가는 길목에 깔린 깊은 구멍 9개…. 구공탄 피워놓고 잘 땐 연탄가스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목구멍’ 막혀 죽는다. 그래봤자 연탄은 몇 시간 못 가는 법. 밤에 졸려도 중간에 갈아줘야 한다. 어차피 갈려야 하는 운명. 그리고 나중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도 된다!


서울 강남구에 272개의 방범용 CCTV가 설치됐다. 얼마 전엔 처음으로 CCTV를 통해 ‘절도’ 용의자가 잡혔다는 소식이다. 앞으로 강남구를 들락거릴 땐 ‘절도’ 있게 행동해야겠다. 걱정되는 것은 서울 강남지역의 구 의회에서 시작된 재산세 인하 결의가 강북 등 다른 지역으로 퍼지듯, CCTV도 같은 길을 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범죄자들이 강남구에서의 ‘작업’을 포기하고 친구 따라 강남을 떠난다면, 덤터기를 쓸 다른 지역민들이 CCTV 설치 ‘작업’에 들어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서울 전 지역과 수도권을 CCTV가 덮게 된다. ‘CCTV 친구찾기’가 ‘휴대폰 친구찾기’(대부분의 경우가 ‘웬수찾기’지만)를 대체할지도 모른다. 허나 이것은 CCTV로도 포착할 수 없는 중국의 국제사기 범죄를 부추기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의 조지 오웰처럼 자신있게 예언할 수 있다. 중국은 후대에 반드시 서울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겠다며 우길 거라고. 뭔 헛소리냐고? 중국의 대표적인 방송사 가 서울의 빅브러더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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