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반환될 예정인 전국 주요 도시 르포… 시민에게 돌아오기에는 군과 지자체의 입장차 너무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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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정부·춘천·원주=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이선경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 정책실장은 2001년 미군기지 캠프롱 앞에서 수십일 동안 시위를 벌였다. 원주지역 시민단체들은 6년 전인 1998년부터 미군기지를 대상으로 주민 권익을 위해 싸워왔다. 미군이 5년간 납부하지 않은 수도세 중 890여만원을 받아내기도 했고, 기지에서 폐유를 흘려보낸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당시엔 주민들의 투쟁과 열정만큼 반백년 ‘남의 땅’이 하루빨리 ‘내 땅’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 믿음 때문에 기지 앞에서도 ‘조기 반환’을 목놓아 외쳤더랬다. 그의 기대 어린 그림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걸까.
공원의 꿈에 부푼 부산 시민들
지난 7월2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래 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 결과 개정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 타결됐다. 전국의 34개 기지를 총 17개로 통폐합하면서 서울·부산·춘천·의정부·인천·원주·대구 7개 대도시의 도심지에 있던 370여만평이 반환되고, 이가운데 춘천·부산·파주·의정부 등은 종전의 LPP계획보다 1~6년씩 앞당겨 돌려받게 됐다. 설마설마 언제 반환받을까 했던 미군기지가 오히려 애초 계획보다도 더 빨리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조기 반환의 설렘과 기쁨도 잠시, 앞당겨 반환되는 기지가 과연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해당 지방자치단체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우리’에게 돌아온 땅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 걸까. 도심 한복판에 미군 부대를 두고 50년 넘는 세월을 보냈던 도시들을 돌아봤다.
8월3일 찾은 부산 중구 연지동 하야리야 부대 건너편 신축 아파트엔 커다란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하야리아 2005년 철수, 20만평 공원이 우리 집 안마당으로’. 발빠른 부동산업자들에게 미군 기지 이전은 곧 공원 조성이라는 강력한 광고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부산에선 미군기지 터를 공원 안 하다 하믄 시민들이 가만 안 있을 낍니다.” 19층 시청사에서 녹지 한평 찾아보기 힘든 회색빛 부산을 굽어보며 부산시 개발행정담당관실의 박재민 사무관은 말을 이어나갔다. “부산은 본래 피난민이 와서 만든 도시 아닙니꺼? 집들이 저래 꼭 붙어서 어디 숨이나 쉬겠습니꺼? 하야리야 부대가 앞으로 또 개발된다믄 부산 시민이 총궐기할 낍니다.” 하야리야 부대 16만3천평을 포함해 주변 30만평에 이르는 부전역 일대는 부산의 2대 도심인 서면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저밀도로 개발이 제한된 채 반백년을 견뎌왔다. 1995년부터 부산 시민단체들이 연대하여 기지반환 운동을 벌여오던 중 96년엔 ‘2002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를 지으려던 부산시가 적극 나서 부대의 시 외곽 이전에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98년에 끝내 협상이 결렬돼 하야리야 부대 이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혹시나’ 했던 시민들도 ‘역시나’ 허탈해졌다. 지난달 개정 LPP에선 하야리야가 옮겨갈 대체터로 꼽혀온 강서구 송정동 기지계획이 아예 취소돼 부산시는 전면 공원 조성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는 판단에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차피 부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철수하는 것이니 부산시가 대체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무도 자연히 없어진 거 아닙니꺼?” 부산시는 7월 말 주거·상업지였던 하야리야 부대터를 자연녹지 지역으로 용도변경한 것을 시작으로 공원 조성계획을 절차대로 밟아가고 있다. 터 대부분이 국방부 소유지라는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겠느냐는 질문에 부산시 관계자는 확신에 가까운 신념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미군기지 때문에 얼마나 피해를 봤는데 또 희생하라면 말이 안 되지요. 우리는 ‘무상양여’ ‘무상사용’을 받아내기 위해 국방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겁니다.”
의정부 터는 국방부에서 매각 방침
이틀 뒤인 8월5일 만난 의정부시 도시계획과 최규인 과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국방부 소유지를 놓고 지자체가 그렇게 맘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의정부시는 이번 LPP 개정에 따라 2005년 캠프 홀링워터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모두 기지 6곳을 돌려받게 됐다. 2002년 LPP 협상 때 캠프스탠리 앞 30만평을 추가로 내주게 됐던 계획 자체가 취소되면서 도심지 25만8천여평이 돌아온다. 이 가운데는 의정부역과 맞닿아 있는 캠프 홀링워터, 캠프 라과디아 등 도심 한복판 노른자위 땅을 포함해 경기도 제2청사가 자리잡은 금오택지개발지구 맞은편 캠프 시어즈·캠프 카일 등이 속해 있다. 의정부역 주변 고층빌딩에 올라보면 이 도시의 신경망이 군부대로 인해 어떻게 일그러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나가는 도로 중간을 라과디아가 뭉텅 잘라먹고 도로 대신 헬기장 활주로를 닦아놓았다. 의정부시는 홀링워터와 라과디아가 반환되면 그동안 기지 때문에 끊겨 있었던 폭 30m의 간선도로를 이어 도심의 대동맥을 복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교통난’이란 오명으로 이름 높은 의정부역 앞 로터리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하지만 의정부는 두 기지에서 공원터 1만6천평과 도로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국방부에서 자체적으로 매각하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홀링워터와 라과디아는 대부분 주거·상업용지이므로 국방부에서 이를 넘겨받아 개발한다면 의정부역 일대의 스카이라인이 변하게 된다. 의정부시는 이와 함께 캠프시어즈와 카일 터 중 8만2천평을 국방부로부터 사들여 ‘경기북도 시대’를 위한 광역행정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최규인 과장은 “이는 의정부시가 수년 전부터 세워왔던 도시계획에 따른 것이고, 국방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추진될 계획이어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여론은 이와 다르다. 의정부 참여연대 이병수 대표는 “의정부시는 서울과 경기 북부를 잇는 관문도시로 이미 만성적인 상습 교통정체에 시달려왔다”며 더 이상의 도심 개발엔 난색을 표한다. “지난해 의정부 시민들을 상대로 미군기지 반환 뒤 활용계획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원·체육시설 등 공익적 용도로 쓰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도심의 심장부에 있는 미군기지를 반환받는 문제는 통상적인 도시계획 수립 절차와는 전혀 다른 것 아닙니까. 시가 개발 프로그램을 강행하기에 앞서 활용 방안을 묻는 철저한 의견조사를 해야 합니다.”
“원주는 군이 돌려줄 수 없다”
본래 2008년에 반환될 예정이었던 캠프 페이지를 2005년 돌려받는 춘천시도 부랴부랴 대응책을 모색 중이다. LPP가 개정된 직후 7월26일 춘천시와 강원도는 함께 ‘미군기지 이전대책 기획단’을 꾸렸고, 8월11일엔 지역 시민단체 16곳이 연대해 범시민대책기구를 구성했다. 이번에 기지를 돌려받는 도시들 중에서 특히 춘천시는 미군부대가 요지 중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고층 건물에 올라 춘천을 내려다보면 허리가 반토막 난 듯한 모습이다. 중앙로와 춘천역 사이에 일자로 뻗어 있는 간선도로가 캠프 페이지에 의해 딱 막혔다. 캠프 페이지가 없었다면 춘천역부터 시청·강원도청 일대가 모두 도보로 10분 반경에 놓여 있다. 춘천시는 그동안 캠프 페이지로 가로막힌 북쪽 방면은 거의 손을 대지 않고 퇴계·칠전 택지개발지구 등 남쪽 방향으로 몸집을 불려왔다. 하지만 미군기지 반환 소식에 잇따라 8월 초 건교부가 미군기지와 소양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신사우동 일대 40만평을 택지개발지구로 발표하면서 개발이 묶여 있던 북쪽 지역 일대가 흔들흔들하고 있다. 강청룡 춘천시의원은 “새로운 택지개발지구 40만평과 미군기지 일대 저개발 지역 40만평을 합하면 80만평에 이르는 새로운 춘천이 탄생하게 된다”며 “반환받는 기지도 이와 연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반환에 대한 꿈도 부풀어가면서 애초 국방부로부터 기지터 매입을 염두에 뒀던 춘천시도 국방부에 ‘무상양여’를 요구하는 것으로 방향 전환했다. 헬기 소음으로 인근 주민들이 50년 동안 고통을 겪었는데, 피해보상 차원에서라도 춘천시 발전을 위해 무상양여해야 한다는 논리다. 춘천시민연대 유성철 시민권리부장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라며 “주민들이 ‘내 땅’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미군기지 주변 답사, 기지 50년사 해설 프로그램 같은 시민참여 문화 프로그램들을 마련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개정 LPP 협상 결과 강원도에서 미군기지는 사라진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정작 ‘군사도시’ 원주는 팔짱만 끼고 있는 형편이다. 원주는 미군기지가 나가도 한국군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국방부 관계자 또한 과의 전화 통화에서 “다른 지역은 확인해줄 수 없지만 원주의 캠프 롱·캠프 이글 21만평은 우리 군을 위한 기지로 계속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시민단체쪽은 “현재 한국군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캠프 이글은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영동고속도로에서 원주로 들어오는 들머리에 놓인 캠프 롱 7만3천평만큼은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기지 조기 반환, 갈등의 시작?
국방부는 LPP 개정 협상에 앞서 “반환되는 부지는 군사 목적상 필요시는 국방부에서 우선 활용하고, 필요하지 않은 국방부 소유지는 매각하여 이전 비용으로 충당한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정해놓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가안보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라며 “과거엔 군이 들어선다고 하면 지자체가 땅도 구해주고 건물도 지어 협조했는데 이제는 기피시설로만 보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성장이 멈춘 땅을 돌려받으며 환호하는 지자체와 군 사이엔 50년이란 잊혀진 땅의 세월 만큼이나 큰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 간극을 메울 기본적인 합의도, 행정적 조정도 부재한 상태다. 기지 조기 반환이라는 기쁜 소식은 갈등을 피하기 어려운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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