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font color="#C12D84" size="4">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댄다.</font> 그렇다면 을돌이와 을순이도 그 마을에 살았을까? 확신컨대 이웃이었다. 을이 있어야 갑은 행복하다. 모든 계약서에 등장하는 두 인물처럼, 지금도 세상의 인간관계는 갑과 을로 나뉜다. 당신이 콧대를 튕기며 산다면 갑일 테고, 아쉬운 소리를 하기 일쑤라면 을이다. 최근 을의 서글픈 사연을 뉴스에서 접했다. 갑에게 술 사주고, 함께 마셔주고, 알랑방귀까지 뀌던 와중에 머리를 다쳐 몸져누워 있던 어느 광고대행사 출신 을. 산업재해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기각당한 것이다. 이유인즉, 자정까지면 몰라도 새벽 4시까지 함께 퍼마셨기 때문이다. “그 정도라면 지 좋아서 한 일이므로 개인적 차원”이란 판결이다. 이러한 ‘갑론’에 ‘을박’이 터져나온다. 갑으로만 살았을 판사님의 ‘꼴갑’이라는 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을의 입장에선 ‘접대는 (술)고래도 졸도케 한다’. 콧노래 부르며 떠받들리는 갑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심정을 알 수 없으니 ‘갑갑’한 일이란다.
“이 땅의 을이여, 을지문덕 장군의 기상을 회복하라”고 충고한다면 비현실적으로 웃기는 짬뽕! 마찬가지로 “을을 을먹… 아니 울먹이게 하지 말라”는 갑을 향한 호소 역시 어리석은 짓. 사실 회사에선 을, 거래처하고는 갑, 부부관계에선 을… 그렇게 관계망은 다중적일 수 있다. 갑과 을의 줄다리기로 움직이는 세상. 집과 일터에서, 당신은 갑인가 을인가.
<font color="#C12D84" size="4">이명박 서울시장은 을이었다고 한다.</font> 그가 새벽까지 주님을 접대하다 돌출하는 민심에 머리를 다쳤으니 말이다. 그는 한 기독교 집회에서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선포했다. 이건 공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그 행사는 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진행됐고, 문제의 발언을 한 시각은 끄트머리쯤이었다. 앞의 광고대행사 출신 을처럼, 자정 넘어서 했으니 사적인 행위다. 업무랑 연관돼도 자정 넘어 다치면 개인 일, 헛소리도 개인 일! 이런 기도나 안 했을까 심히 의심될 뿐이다. “수도서울 버스를 하나님께 몽땅 봉헌하나이다. 시민들이 불편하든 말든 중앙차선에 한줄로 길게 세워놓았으니 앞차부터 줄줄이 몰고 가시옵소서.”
아무튼 그의 봉헌사는 ‘수도서울 이전’에 관한 논쟁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국민투표를 한다면 “충청도로 갈거냐 말거냐”가 아니라 “하늘나라냐 충청도냐, 아님 걍 관둘 거냐”로 초점이 이동하게 됐다. 예전의 그답지 않게 하늘나라로의 ‘천도’ 주장을 펴게 된 셈이니까. 그런고로 시장님께 보충취재를 하고 싶다. “행정부만 봉헌하시는 겁니까, 입법부·사법부도 봉헌하시는 겁니까?”
<font color="#C12D84" size="4">수구언론은 ‘봉헌’에 오락가락한다.</font> 얼마 전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사상전향 공작에 저항하다 숨진 비전향 장기수 3인의 ‘민주화운동 공로’를 인정키로 했다. 이라크에 젊은 생명을 봉헌해야 한다고 박박 우겨온 조·중·동은 이번엔 정반대로 초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봉헌한 셈이다.” 에라, 시답잖은 봉헌 이야기 때려치우자. 대신 낭만적인 봉헌 이야기 하나. 한 여인에게 몸과 마음을 봉헌할까 말까 고민 중인 내 후배는 그녀로부터 이런 세레모니를 ‘지시’받았다. “명품 반지와 목걸이, 장미 100송이를 들고 무릎 꿇은 채 세레나데를 함 불러봐. 함께 살지 말지 검토해볼게.” 후배는 ‘봉’헌하냐며 투덜거리지만, 그런 봉헌을 강요당할 때가 아름다운 청춘임을, 정작 청춘들은 모르고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달러 빚이라도 내 천만금을 봉헌하고픈 노땅들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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