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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림과 방배동도 처참한 실패

등록 2004-07-02 00:00 수정 2020-05-03 04:23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2번 출구로 나와 100m쯤 앞을 바라보면 지난 2월 재건축을 마치고 새로 문을 연 ‘신도림 풍물 새시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지난 1월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문을 연 ‘풍물시장’처럼, 서울시가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내쫓긴 노점상들에게 먹고살 길을 터주겠다고 만든 시장이다. 지금은 겨우 점포 28개가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이 처음 문을 열던 1990년에는 포장마차 113개가 오가는 시민들을 유혹하던 진짜 ‘풍물시장’이었다.
지난 1989년 관선 고건 시장은 종로·명동·영등포·한강 둔치 등에 무질서하게 자리잡은 노점상들을 철거한 뒤, 서초구 방배동 사당역 네거리 복개도로(5400여평)와 구로구 구로5동 신도림 전철역 후문 앞 공터(1500여평) 등 두곳에 풍물시장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이곳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자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풍물시장은 때마침 서울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현대식 슈퍼마켓과 대형 할인매장을 당해내지 못했다. 서울시청 건설행정과 임승재 주임은 “대형 마트에 견줘 위생 상태도 나쁘고 물건 값도 비싸 상가가 슬럼화됐다”고 말했다. 신도림은 기껏해야 포장마차와 좌판 100여개를 갖춘 중간급 시장이었지만, 방배동은 3평짜리 좌판대가 1016개나 설치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이었다.
손님 발걸음이 끊긴 시장은 지역 사회에 커다란 골칫거리가 됐다. 시장에서 절도·폭행 등 크고 작은 범죄가 끊이지 않자, “시장을 없애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이어졌다. 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서울시와 상인들 사이의 이주 협상은 5년을 질질 끌며 2000년 12월에야 끝났다. 당시 방배동 풍물시장 철거 업무를 담당했던 서초구 내곡동사무소 김종태 주임은 “상인들은 가판대 하나에 150만원씩 이주비를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시 노점상이 돼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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