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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노무현-조갑제의 ‘브라자후도’

등록 2004-07-02 00:00 수정 2020-05-03 04:2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흑묘백묘’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공부에 별 취미가 없었던 이들이라면, 중고교 시험시간에 가끔 그랬을 것이다.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의 쥐 잡아먹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로지 흑과 백만 묘사할 수 있는 지적 상태, 그러니까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라는 사실 외에는 캄캄한 순간 말이다. 가, 나, 다, 라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 위해 볼펜을 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전체 정답을 하나로 꿰어 뭔가 있어 보이게 찍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해보기도 한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통해 김선일씨가 절규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학창시절의 아픈 기억이 튀어올랐다. 1번부터 25번까지의 사지선다형 출제 문제에 대해 한때 객기로 찍었던 정답의 순서가, 바로 김선일씨의 그 애타던 간청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가라 나가라 다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다나가라 나가 다나가.” 한국 정부는 “이라크에서 나가라”는 요구를 거부했고, 그는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왔다. “나가라”는 메시지로 답안지를 메운 결과, 나는 ‘참담한 점수’… 참수를 받았다. 두 가지가 오버랩되며 더욱 슬퍼지고 숙연해진다.


부모로부터 용돈을 뜯어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책을 산다, 병원에 가야 한다, 지갑을 도둑질당했다 등등…. 그런데 최근 신종 수법이 활개를 치고 있다. 다음은 한 50대 초반 남성의 증언이다. “군대에 가 있는 자식놈이 어느날 전화를 했다. 훈련도 고된데 월급은 거지같이 준다… 집에서 부쳐주는 현금도 없으니 낙도 없다… 이럴 바에야 확 이라크 파병부대에 자원입대를 해서 돈이라도 많이 받는 게 낫겠다고 그러더라.” 부자 관계를 인질로 삼아 “용돈을 송금하지 않을 경우 내 목숨 나도 모른다”는 자해 협박인 셈이다.
엄마아빠들은 외교부마냥 전화를 받아놓고 안 받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잘됐다. 용돈도 벌고, 평화재건도 하게 됐다”며 뻘소리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대신 24시간 안에 면회를 가 멱살을 잡든지 현금을 내놓고 협상을 하든지 할 거다. 이라크 전역이 피바다로 치닫는 이때, 자이툰 부대원들의 부모들께서는 ‘자제분’들의 ‘자제’를 당부하든가, 다리몽둥이를 분지르든가, 용돈 인상 재협상에 나서든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파병 철회의 진정한 길이 혹시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노조’가 정말 싫다. 우리는 매우 유감스런 ‘노조’를 목격하고 있다. 최근 에 노조가 설립돼 화제가 됐지만, 그 얘기와는 무관하다. 대표 조갑제 선생께서 이라크 파병을 고수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게 된 것, 즉 엽기적 ‘노조(노무현-조갑제) 연대’의 창립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적에게 똥침’을 포기하고 ‘적과의 동침’을 선택하고 만 것인가.
이건 ‘브라자후도’라 아니할 수 없다. 다름 아닌 영화 의 일본 개봉 제목이다. ‘브라더후드’(brotherhood)가 정확하지만, 일본인들은 그렇게 발음한다. 인민군과 국방군, 극우와 비극우로 갈라져도 한민족의 ‘형제애’는 살아 있는 것. 일본 아줌마팬들이 한류 스타 배용준의 애칭을 연호하듯 둘이 서로 ‘용사마’를 외친 뒤 하이파이브를 할지 모른다. “용서하마”의 줄임말! 화해 뒤엔 남북 고위 장성급 회담을 무작정 열어 남북 통일팀을 구성한다. 아테네 올림픽이 아닌, 적들이 활개치는 팔루자로 먼저 보낸다. 노조 합작을 국공합작의 통일전선으로! 브라자후도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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