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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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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가의 비극/ 김명인

등록 2004-06-24 00:00 수정 2020-05-02 04:23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 강물 위…”로 시작되는 이라는 제목의 그 노래를 불러본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4반세기도 더 전, 대학 시절에 벗들과 모여 주점에 가거나 엠티를 가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을 정도로 추억의 애창곡이었다. 특히 대성리나 청평 등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 엠티를 가서 나룻배로 강을 건널 때, 강물 위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맛은 각별했다. 에카테리나 여제가 연모했다고 전해지는, 또 다른 농민반란군 수괴였던 푸카체프와 함께 우리 70년대 후반 구닥다리 운동권들에게는 녹두장군의 러시아 버전으로 기억됐던 스텐카 라진을 추억하는 그 노래를, 그때는 질리지도 않고 참으로 목청을 다해 수없이 불러댔다.

러시아 민요 의 모순

그러나 80년대에 와서 다른 노래들, 광주항쟁 이후의 , 또 조금 뒤의 등등의 토종 386 노래들에 밀려 그 노래는 더 이상 잘 부르게도 들리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80년대 말쯤 개봉된 밀란 쿤데라의 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에서 그 노래가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소비에트 점령군 장교들의 회식 자리에서 마치 승전가처럼 불려지고 그것을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역겨워하는 장면에서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복잡한 모욕감을 느꼈던 일이 기억난다. 침략군의 승전가로 불리는 것, 날라리 같은 자유주의자에 의해 그것이 경멸되는 것 모두가 조금 견디기 어려웠다. 그 이후 이 노래를 다시 부를 일은 없었고, 가끔 러시아 민요 음반을 통해 조금 복잡한 기분으로 종종 들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며칠 전,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니콜라이 갸우로프라는 유명한 베이스 가수의 부음을 전하는 FM 음악방송에서 그의 목소리를 통해 이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이 노래의 가사가 농민반란군의 지도자인 스텐카 라진이 공주를 납치해서 볼가강 배 위에서 그녀와 주연을 벌이다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농민들의 항의를 듣고 문득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공주를 강물 속에 빠뜨리고 다시 농민들 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임을 전해주었다.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주린다” “꿈을 깨친 스텐카 라진, 장하도다 그 모습, 외롭도다 그 모습” 우리가 불렀던 그 부분이다. 우리는 그 시절, 혁명과 반란의 대의 앞에서 사랑도 가차없이 버린 영웅 스텐카 라진에 대한 경외의 마음으로 이 노래를 그렇게 수없이 반복 재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스텐카 라진은 그렇게 다시 농민 속으로 들어가서 영웅이 되었겠지만, 납치되어 반란군 수괴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한순간 수중 고혼이 되고 만 그 공주는 얼마나 끔찍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갸우로프의 그 장려한 목소리의 뒤에서 코러스를 넣는 합창단 속의 여가수들은 이런 내용의 노래에 아무 의식 없이 그렇게 고운 음성을 바쳤을까 하는 생각. 또 그 시절 함께 노래를 부른 동료 여학생들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혁명이며 반란이며 이런 일들이 얼마나 반여성적이며 반생명적인가 하는 생각, 그리고 역사의 뒤꼍에서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희생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고 세상의 모든 찬가며 기념비며 헌사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생명의 찬가라면 모두 함께 부르리

세월이 많이 흘렀다. 세상은 여전히 착취와 억압과 기아와 살육이 횡행하는, 그러면서도 아무도 그렇다는 사실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으려는 ‘침묵의 아비지옥’이지만, 그 지옥을 또 다른 지옥으로 대체하는 일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다시는 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 뒤에 누군가의 피와 눈물을 숨기고 있다면, 그 어떤 찬가도 행진곡도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기념비에도 그 어떤 헌사에도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 다른 힘과 다른 지혜로, 다른 정의와 다른 사랑으로, 아무도 억압하지 않는,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낮은 음정으로, 여럿이 불러도 혼자 부르는 것 같은 그런 노래만을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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