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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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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이냐 고통철이냐

등록 2004-06-03 00:00 수정 2020-05-03 04:23

사상역 사고 이후 승차감과 안정성 문제 논란… 철도청은 대부분의 불만에 억울하다는 반응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고속철이 아니라 ‘고통(苦痛)철’입니다. 국민 혈세로 만들었는데 정말 실망이 큽니다. 누가 고속철을 이용한다고 하면 조용히 말리겠습니다.”(아이디 김숙희) 지난 5월23일 부산 사상역 부근에서 고속철 정전사고가 난 직후 철도청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그동안 누적된 고속철(KTX)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전문 기술자 부족으로 정전사고

네티즌들의 지적은 고속철의 승차감과 안정성 문제에 집중됐다. 새마을호보다 요금은 평균 25%가량 더 비싼데도 승차감은 새마을호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잦은 고장으로 정시율(제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비율로 철도청은 현재 98% 수준이라고 주장한다)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고, 대형사고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속철은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로도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관리하는 철도청은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통 이후 최악의 사고로 비난받은 부산 사상역 부근의 고속철 정전사고는 철로 보수작업을 하던 직원의 사소한 실수로 일어났다. 철도청에 따르면 고속철은 철로 위의 전선을 팽팽하게 당겨 평행을 유지해야 열차에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는데, 전선을 팽팽하게 당기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철도청 관계자는 “전선을 당기는 작업은 시공업체의 전문 인력과 철도청 직원이 함께하도록 돼 있는데, 철도청 직원이 혼자 작업한 곳에서 정전 사고가 난 것”이라며 “구조적인 결함으로 발생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재발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철도청은 사고 직후 부산 본부의 전기담당 간부 2명을 보직 해임하고 보수 작업에 투입되는 직원들을 상대로 특별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철도청의 주장과 달리 재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철도청 관계자는 “전선 보수 작업은 매일 밤마다 해야 하는데 전문 기술자 수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도 시공업체의 전문 기술자를 기다리지 않고 미숙련 직원이 혼자 작업하다 발생한 것이다. 결국 철도청 직원들이 숙련된 기술자가 될 때까지는 이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철도청은 정전으로 고속열차가 멈추더라도 뒤따라오는 열차와 충돌하는 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철로에 열차가 멈췄을 경우에는 열차 신호 체계에 따라 뒤따라오는 열차가 자동으로 멈춰서게 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속철은 이중의 열차 자동정지 장치가 있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철도청 수송안전실 양대권 팀장은 “고속철 운전실에는 3분마다 벨이 울리는데 기관사가 5초 이내에 벨을 멈추지 않으면 자동으로 열차가 멈추게 돼 있다”며 “이는 심신 장애 등 기관사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거나 졸음 운전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역방향 좌석, 논란 속으로

고속철에 대한 시민들의 가장 큰 불만은 승차감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데 있다. 특히 역방향 좌석에 대한 불만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다. 기차가 달리는 방향과 반대로 앉아 가는 동안 현기증과 구토 증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순방향과 역방향 좌석이 만나는 8, 9번 자리는 낯선 사람과 함께 앉았을 때 어색함에서 오는 고통으로 곤혹스러운 여행이 되고 있다. 상대방의 무릎이 닿을 만한 거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다리를 어디에 둘지 몰라 쩔쩔매는가 하면, 아이들이 탔을 경우에는 신발을 벗기고 의자에 무릎을 꿇려 앉히는 등 상대방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 또 좌석 등받이가 고정돼 있어서 허리를 펼 수 없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 심하다.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여행하다 열차에서 내리면 온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도청은 좌석 배치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철도청 관계자는 “역방향 좌석에 앉았을 때 현기증이나 구토 증세가 발생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아직 승객들이 고속철의 역방향 좌석에 익숙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철도청은 고속철 개통 전에 여러 차례 모의실험을 했는데, 역방향 좌석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역방향 좌석에서 현기증이나 구토 증세가 발생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멀미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자주 거론되는 게 ‘감각충돌’ 현상인데, 이는 귀의 평형(전정)감각과 시각이 부자연스럽게 충돌해 중추신경계에 혼란을 일으켜 어지러움과 피로, 메스꺼움 등을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고속철은 일정한 속도로 흔들림 없이 달리기 때문에 다른 열차에 비해 감각충돌이 적게 일어난다. 따라서 고속철의 역방향 어지러움은 자주 경험해보지 못한 데서 오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인체에 해롭지는 않다. 역방향 좌석에 익숙해지면 어지러움이나 구토 증세는 곧 사라진다.

좌석 간격이 좁다?

고속철의 일반실에 역방향 좌석을 설치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순방향 좌석만 있을 경우 열차가 종점까지 갔을 때 열차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철도청 관계자는 “열차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철로를 둥글게 설치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며 “순방향으로 하기 위해 의자를 회전식으로 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경우 좌석 수가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일반실에도 특실과 같은 회전식 의자를 설치할 경우 좌석이 13% 정도 줄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철도청은 역방향 좌석에 대한 승객들의 불만이 높자 지난 4월부터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역방향 좌석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철도청은 6월부터 역방향 좌석에 대해서는 요금을 5% 할인해주기로 했다. 철도청 관계자는 “역방향은 프랑스의 테제베(TGV)나 독일의 ICE, 일본의 신칸센에도 있지만 승객들이 큰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라며 “하지만 더 쾌적한 승차감을 위해 2007년 열차 추가 주문 때 의자를 회전식으로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청은 일반실의 좌석이 작고 앞뒤 간격이 좁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고속철이 새마을호와 비교할 때 의자 폭도 넓고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돼 있어 더 편리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마을호 좌석의 폭은 특실이 450mm, 일반실 445mm인 데 반해 고속철은 각각 500㎜로 더 넓다. 다만 의자의 앞뒤 간격은 새마을호에 비해 85∼220mm 정도 좁은데 이 경우에도 프랑스, 독일, 일본에 비하면 결코 좁은 게 아니다. 철도청 관계자는 “새마을호가 운임에 비해 과도하게 좌석이 편리했던 것”이라며 “고속철은 좌석 등받이가 고정돼 있는 대신 좌판이 앞뒤로 움직이기 때문에 새마을호처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20일에는 고속철 여승무원이 객실과 객실 사이의 서비스 공간에서 전기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철도청은 “난방을 위해 설치한 히터에 전원을 공급하는 배선의 결함으로 감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고 이후 전 차량에 대해 안전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철도청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다. 철도청 수송안전실 관계자는 “당시 감전된 전기는 비오는 날 철길을 건널 때 전차선 부근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라며 “인체에 큰 위협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자파 경고하자 민사 소송 제기

철도청은 고속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21일 한양대 환경 및 산업의학연구소는 고속철 이용객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것보다 높은 전자파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고속철에서 두 차례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객실에서 최대 70mG(G는 단위면적당 자기의 밀도를 나타내는 단위·가우스), 객차 연결 통로는 최대 400mG의 전자파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고속철의 전자파 최고치(400mG)는 34만5천V의 고압 송전로 부근 15m 지점 전자파(125mG)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며 “고속철의 전자파는 국제 기준치(833mG)를 크게 밑돌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철도청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철도청 관계자는 “고속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허위 사실을 유포한 한양대 연구소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자파의 인체 유해 여부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된 게 없다.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도 없지만 무해하다는 증거도 없다. 한양대 홍승철 교수는 “연구팀은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인데 철도청이 본질을 외면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전자파를 줄이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승객의 안전을 위해 미리 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철도청은 고속철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에 대체로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김세호 철도청장은 “그동안 고속철의 잦은 정지 사고는 고장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가동돼서 발생한 것”이라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사고 원인을 밝히다 보니 열차 정차 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철도청의 고속철 운행이 미숙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로 작은 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민들이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속철이 ‘고통철’의 누명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민들의 이해가 아닌 철도청의 노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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