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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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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물러서니 자연이 밀려왔다

①축구장 1400개 규모의 습지 되돌린 네덜란드 ‘붉은발도요 계획’
②방조제 부영양화 해소하기 위해 해수유통 결단한 ‘새로운 델타 프로젝트’
③수백 년 보존한 사구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자연’ 찾는 ‘샌드 코스트 프로젝트’
등록 2024-03-09 16:43 수정 2024-03-12 18:28
2024년 2월13일 네덜란드 스하우언다위벨란트섬 남쪽 해안가에 염습지가 복원된 모습. 이곳엔 ‘카우데케르커’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었지만, 이젠 교회 첨탑만이 남아 있다.

2024년 2월13일 네덜란드 스하우언다위벨란트섬 남쪽 해안가에 염습지가 복원된 모습. 이곳엔 ‘카우데케르커’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었지만, 이젠 교회 첨탑만이 남아 있다.


낮은(Nether) 나라(Land). 지면이 낮고 평평해서 이전부터 ‘네덜란드’라고 불렸다.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벗어나 해안가 옆 도로로 나오자 가장 먼저 제방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수면과 지표면 차이가 크지 않아 네덜란드는 수백 년 전부터 해안가에 제방을 쌓았다. 차로 고속도로를 두 시간 남짓 달리자 바다가 나왔다. 한국의 남해안처럼 해안선이 복잡했지만 도로는 거의 일자로 뻗어 있다. 내륙과 섬 사이에 설치한 댐과 수문 덕이다. 복잡한 해안선 사이에 스며든 바다를 가로막은 댐 위로 차가 지나갔다.

그렇게 몇 번에 걸쳐 댐을 건너자 벨기에의 바로 위쪽이자 네덜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제일란트주에 도착했다. 스위스 남동부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지나 네덜란드까지 흐르는 라인강과 프랑스에서 흘러오는 뫼즈강, 스헬더강의 하구가 이곳에 있다. 여러 갈래로 나뉘는 탓에 해안선도 복잡하다. 그 복잡한 해안선 중간에 스하우언다위벨란트섬이 있다. 2024년 2월13일, 오스테르스헬더해를 낀 섬 남쪽 해안선을 따라 차를 타고 들어갔다.

마을이 있었던 곳에 교회 첨탑만

바다 옆 방조제 위에 도로를 낸 덕에 바다와 내륙이 한눈에 들어왔다. 북해와 이어진 오스테르스헬더해를 바라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습지가 보였다. 제멋대로 자란 갈대와 나무, 물웅덩이가 규칙 없이 어우러진다. 저 멀리 습지 끝에 손톱만 한 집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지평선이 끝날 때까지 습지만 보이기도 했다. 습지와 바다가 끝없이 이어질 듯한 길에서 잠시 멈춘 건 빨간색 건물이 시야를 가렸을 때다. 붉은색 벽돌로 만든 약 20m 높이의 탑이었다.

“교회 첨탑이에요. 아주 예전에 여기 마을이 있었다는 증거죠.” 티에이르트 블라우(75) 박사가 말했다. 그는 제일란트 주정부에서 2014년까지 환경보호 및 물관리 정책 담당자였다. 원래 이곳에 있던 마을 이름은 ‘카우데케르커’. 카우데케르커를 비롯해 이 근방에는 15개의 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해일과 폭풍을 견디지 못한 제방은 자주 무너졌고, 마을 사람들은 뒤쪽 내륙에 새로 제방을 쌓고 좀더 육지 쪽으로 물러나 살아야 했다. 그게 벌써 400여 년 전, 1600년대 이야기다. 그렇게 마을은 사라졌지만 교회는 홀로 남아 자리를 지켰다.

수백 년 전 마을이었던 곳에 주민들은 수십 년 전까지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 철새가 쉬고 있다. 네덜란드는 1991년부터 2014년까지 스하우언다위벨란트섬 인근 농지를 자연으로 돌리는 재자연화 작업을 진행했다. 인간이 새로운 제방을 쌓고 육지 쪽으로 물러난 뒤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이전 땅을 그대로 돌리는 형태의 복원이었다.

이렇게 기존 농지를 자연으로 돌린 면적만 약 1천 헥타르(ha), 축구장 1400개 규모다. 이 프로젝트는 ‘붉은발도요 계획’(Plan Tureluur)이라 불렸다. 1년 내내 이곳에서 붉은발도요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자연으로 되돌린 습지에 동물이 하나둘 들어왔다. 사슴과 부엉이, 들쥐 등이 당장 눈에 보였다. 재자연화한 습지는 가을에 염생식물이 피운 꽃으로 붉게 물든다.

붉은 벽돌의 첨탑에서 조금 더 해안가를 따라 들어가니 움푹 들어간 만이 나왔다. 수십 년 전까지 땅으로 사용했을 방조제 안쪽에 갯벌이 차 있었다. 갯벌 뒤로 높게 솟은 언덕에 올랐다. 철새 수천 마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1953년까지만 해도 방조제가 멀쩡했는데, 그때 일부가 무너졌어요. 이후 뒤로 2차 제방을 쌓고 물러났죠. 그러자 갯벌이 생겼어요. 따로 뭘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생긴 거예요.” 블라우 박사가 말했다.

1953년 네덜란드 남부에 해일로 인한 대홍수가 일어났다. 이 홍수로 1800명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이 홍수 피해를 계기로 네덜란드는 그 유명한 ‘델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지만 해안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줬다.

2024년 2월13일 네덜란드 스하우언다위벨란트섬 남쪽 해안가에 있는 염습지에 철새들이 앉아 쉬고 있다. 이 일대에선 1991년부터 2014년까지 농지를 자연으로 돌리는 재자연화 작업 ‘붉은발도요 계획’이 진행됐다.

2024년 2월13일 네덜란드 스하우언다위벨란트섬 남쪽 해안가에 있는 염습지에 철새들이 앉아 쉬고 있다. 이 일대에선 1991년부터 2014년까지 농지를 자연으로 돌리는 재자연화 작업 ‘붉은발도요 계획’이 진행됐다.


해일로부터 안전해지자 부작용 생겨나

델타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델타’, 즉 네덜란드 남부 삼각주 지역에 관한 프로젝트였다. 복잡한 해안선의 최전선에 해일을 막기 위한 큰 댐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1962년 휘어스호(VeerseMeer) 하구에 잔트크레이크댐을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북해로 이어지는 대형 하구에 연달아 댐을 건설했다. 더는 해일로 인한 홍수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델타 작업은 하구를 분리된 수역으로 바꿨어요. 하구의 역동성은 완전히 사라졌고요.”(블라우 박사) 델타 프로젝트는 초기엔 탄력받아 추진됐지만 1960년대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댐 건설에 따른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 환경단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네덜란드 제일란트 주정부는 북해와 오스테르스헬더해를 막는 방조제를 지을 계획이었다. 그때 환경단체와 어민들이 필사적으로 댐 건설을 막았다. 댐을 짓는 순간 하구 생태계가 무너진다는 이유였다. 이들의 지속적인 반대 시위 끝에 정부는 댐을 폐쇄하지 않고 24시간 해수 유통이 가능한 댐을 만들기로 했다. 설계가 변경된 탓에 공사비가 3배로 늘어났고, 공사 기간만 10여 년이 걸렸다. 그 결과 1986년, 지금의 오스테르스헬더댐이 만들어졌다. 평상시엔 24시간 해수 유통을 하고, 홍수 피해가 예상될 때만 수문을 닫는 방식이다.

노르트베벨란트와 스하우언다위벨란트 사이에 들어선 오스테르스헬더댐을 보기 위해 중간의 섬에 내렸다. 댐은 이 섬을 중심으로 양옆에 길게 뻗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하구댐 다리 사이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왔다. 섬 한쪽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검은머리물떼새 등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새들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안내판 뒤로 보이는 암석 위에 검은머리물떼새가 보였다.

해수 유통이 가능한 댐만 있는 건 아니다. 오스테르스헬더댐은 그나마 만들어질 때부터 해양생태계를 고려해 설계됐지만, 해일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만 가지고 먼저 지어진 방조제들 인근에서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가장 먼저 문제가 제기된 건 델타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인 휘어스호였다. 휘어스호는 노르트베벨란트 남쪽에 있는 호수로 하구도 다른 곳에 견줘 작다. 댐을 짓기 전까지는 오스테르스헬더해와 이어져 있었지만 1961년 이후 해수 유통이 완전히 막혔다. 그러면서 부영양화가 진행되는 등 수질이 급격히 나빠졌다. 생태계는 파괴됐다.

2000년대 초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이런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고 지역 주민들도 나서자, 주정부는 환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의미의 델타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블라우 박사는 2000년부터 14년 동안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다.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조처는 2004년 휘어스호를 막은 잔트크레이크댐에 터널을 뚫는 것이었다. 댐 하부에 가로 5m, 세로 3m 높이의 작은 터널 2개로 적게나마 해수를 유통했고, 수질은 빠르게 개선됐다.

휘어스호 사례는 국내에도 오랫동안 둑에 막혀 오염됐던 담수호에 적은 규모의 해수를 유통시켜 수질을 정화하고 생태계를 되살린 ‘모범 사례’로 여러 차례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렇게 해수 유통이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지금 휘어스호의 상태는 어떨까.

네덜란드 제일란트주에 있는 오스테르스헬더댐. 북해와 오스테르스헬더해 사이를 막는다. 환경단체와 인근 주민들의 항의로 기존 설계를 바꿔 24시간 해수 유통이 가능한 댐으로 건설했다.

네덜란드 제일란트주에 있는 오스테르스헬더댐. 북해와 오스테르스헬더해 사이를 막는다. 환경단체와 인근 주민들의 항의로 기존 설계를 바꿔 24시간 해수 유통이 가능한 댐으로 건설했다.


해수 유통 터널 입구엔 홍합 양식장이

2024년 2월13일 오후 잔트크레이크댐을 찾았다. 때마침 오스테르스헬더해 바닷물이 휘어스호 안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짙고 불투명한 휘어스호의 물에 맑은 해수가 섞였다. 터널 입구엔 홍합 양식장이 있었다. 유입되는 해수를 바라보면서 블라우 박사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해수 유통) 터널을 만들기 전에 수질이 2였다면 이후엔 7~8까지 수질이 올라갔어요. 근데 10까지는 안 올라요. 더 큰 문제는 다시 점점 나빠진다는 거예요.” 하굿둑으로 막힌 하구에 정답처럼 여겨졌던 해수 유통 터널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유통되는 해수가 부족해서인가 싶지만, 정확한 원인을 연구해봐야 한다. “처음엔 빠른 속도로 개선됐지만 점차 산소가 없는 층이 생겼어요. 터널이 충분한 대안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우리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죠.”

블라우 박사는 현재도 주정부가 북해와 맞닿은 휘어스호 반대편을 뚫는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이래서 우리가 매일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문제는 휘어스호에만 생긴 게 아니었다. 24시간 해수 유통을 결정한 오스테르스헬더댐이었지만 그럼에도 안쪽 해안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댐 안쪽에 형성된 거대한 모래톱이 점차 유실된다는 점이었다.

스하우언다위벨란트섬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이 모래톱은 ‘로헨플라트’라고 부르는 작은 섬이다. 침식과 퇴적이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섬이지만 너비만 수킬로미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 섬이 중요한 이유는 물범과 철새 등이 휴식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테르스헬더댐의 수문을 24시간 열어놓고 해수 유통을 시켜도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는 해수로 인한 침식과 퇴적이 이전보다 줄어 섬의 크기가 유지되지 않고 있다.

“댐이 없을 땐 충분한 조수간만의 차를 확보할 수 있었기에 유지가 됐어요. 그런데 댐이 생긴 뒤 침식과 퇴적의 균형이 무너졌어요. 지금은 퇴적보다 침식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블라우 박사)

주정부는 이 모래톱을 유지하려고 매년 바지선 등을 이용해 모래를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생태계를 고려해 지은 댐이라 하더라도, 자연의 흐름을 막은 대가가 없지는 않은 것이다.

오스테르스헬더댐보다 더 북쪽에 있는 흐레벨링언호나 하링블릿호도 상황은 비슷하다. 흐레벨링언호와 북해를 막는 브라우에르스댐은 1971년 만들어진 뒤 1978년 작은 터널을 뚫었다. 휘어스호와 비슷한 사례지만 훨씬 거대한 호수였기 때문에 이 정도로는 해수 유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염도만 조금 높이는 정도였다. 이후 아직 새로운 방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원래 담수호도 해수 유통

담수호인 하링블릿호의 경우 상황이 조금 진전됐다. 1970년 하링블릿댐이 만들어진 뒤 해수 유통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다가, 2018년부터 밀물 때 수문을 완전히 열었다. 이렇게 댐을 개방한 이유는 유럽연합(EU)의 요구 때문이었다. 강의 하구는 네덜란드에 있지만 상류는 다른 유럽 나라들에 걸쳐 있는데, 댐을 지은 뒤 물고기의 이동이 제한되는 등 강 상류 생태계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현재는 여러 모니터링 장치를 통해 댐에서 약 12㎞까지만 해수가 유통되도록 조정한다. 애초 담수호였던 탓에 인근에서 농업 하는 주민들이 반발했지만, 상류에서 지하수를 끌어오는 방법을 통해 해수 유통 확대를 설득했다.

제일란트 주정부 수자원공사에서 하링블릿댐 관리사무소 책임자로 일하는 닐스 카위컨은 “댐 개방 이후 어류 이동이나 염도, 산소 농도 등 구체적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며 “이렇게 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들은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다. 자연은 자연에 인공적 변화를 가한 인간을 오랜 시간을 들여 교육한다.

한겨레21 이동 경로 및 네덜란드 ‘델타 프로젝트’ 시행 지역

한겨레21 이동 경로 및 네덜란드 ‘델타 프로젝트’ 시행 지역


북해와 맞닿은 남부 지역의 강 하구 생태계 복원을 시도하면서 고민을 반복하는 네덜란드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향했다. 네덜란드의 오스테르스헬더댐에서 약 700㎞ 떨어진 독일의 한 시골 주차장에 다다른 때는 2월17일 오전이었다.

울창한 소나무숲 앞에서 베레니케 한젠(25)을 만났다. 그는 대학에서 자연보호학을 전공하고 세계자연기금(WWF)에서 사구 복원 프로젝트 관리자로 일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은 장크트 페터오르딩, 독일에서 유명한 휴양지이자 관광지다.

지도상으로는 1㎞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었지만, 주변엔 소나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산책길로 한젠이 앞장섰다. “이 지역은 되게 복합적이에요. 소나무를 지나 우선은 사구로 갈 겁니다.” 100m 정도 소나무 사이를 뚫고 걸어가자 갑자기 탁 트인 언덕이 나왔다. 주변이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사구였다. 신기하게도 이곳에만 나무가 없었다. 유럽 서부와 북서부 아프리카에 분포하는 진달래과 헤더, 억새풀, 모래사초 등이 덮여 있었다. 침입성 식물종인 선인장 이끼와 크랜베리 나무도 군데군데 보였다.

WWF가 2023년 발간한 페터오르딩 자연보고서를 보면, 이 사구는 수백 년 동안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 상태로 보존됐다. 이 사구는 14~16세기에 형성됐고, 18세기 말부턴 이쪽 지역의 사구를 보호하기 위한 인공조림이 시도됐다. 1864년 이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젠이 몸담은 WWF와 바덴해(와덴해) 보존협회 등은 이 일대에 ‘샌드 코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핵심은 산림 전환과 사구 보호다.

장크트 페터오르딩의 오래된 사구. 그 주변을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다. 소나무숲을 넘으면 염습지와 신생 사구가 나타난다. 그 뒤에 모래사장과 바덴해가 있다. Martin Stock, WWF 제공

장크트 페터오르딩의 오래된 사구. 그 주변을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다. 소나무숲을 넘으면 염습지와 신생 사구가 나타난다. 그 뒤에 모래사장과 바덴해가 있다. Martin Stock, WWF 제공


독일 장크트 페터오르딩(St. Peter-Ording) 지역 단면도

독일 장크트 페터오르딩(St. Peter-Ording) 지역 단면도


소나무를 대체하는 자생종 참나무를 퍼뜨리는 방법

산림 전환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페터오르딩 자연보고서는 “기후변화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침엽수림 피해를 증가시킬 수 있다”며 “강수량이 부족하면 소나무가 해충에 더 취약해지고 바람에 대한 회복력도 약해진다”고 진단했다. 한젠은 이렇게 설명했다. “소나무가 자생종이 아니거든요. 이 지역에서 자생하는 참나무 등으로 대체하고 있어요. 지금 심긴 소나무나 잣나무는 뿌리도 얇아요. 지속 가능한 종이 아니기 때문에 대체해주는 거죠.”

그런데 참나무를 퍼뜨리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인위적으로 어린 참나무를 심기도 하지만, 도토리를 상자에 담아놓고 주변 동물들에 의해 퍼지도록 하는 방법도 쓴다.

나무 없이 드러나 있는 사구의 경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침입성 선인장 이끼와 크랜베리 나무 등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때 이 지역에 서식했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도마뱀종을 늘리는 작업도 하고 있다. 샌드 코스트 프로젝트는 2020년 시작했다. 계획은 2026년까지다. “이 근처 해안엔 보통 제방이 형성돼 있는데 이곳은 없어요. 예전부터 사구가 잘 형성돼 있어서 그래요. 이 사구를 어떤 식으로든 잘 유지해서 해수면 상승 같은 기후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모델로 만들려고 해요.”(베레니케 한젠)

독일 장크트 페터오르딩의 사구에서 소나무숲 사이로 관광객이 걸어가고 있다. 소나무숲 뒤로 염습지와 신생 사구,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독일 장크트 페터오르딩의 사구에서 소나무숲 사이로 관광객이 걸어가고 있다. 소나무숲 뒤로 염습지와 신생 사구,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사구를 지나고 짧은 소나무숲을 다시 지나자 더 놀라운 광경이 나왔다. 앞으로는 수백m, 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염습지(염도가 높은 습지)가 펼쳐졌다. 이 염습지도 사구처럼 수백 년 동안 인간의 개입 없이 보존됐다고 한젠은 말했다.

1유로를 내고 염습지 위로 설치된 나무다리를 건넜다. 물길이 자유롭게 염습지 사이를 헤집었고 그 사이로 수많은 염생식물(염분이 많은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 자리를 잡았다. 중간에 연못과 웅덩이도 보였다. 두꺼비와 개구리 등 양서류도 서식한다. 염습지 넓이만 약 700ha에 이른다. 그 뒤로 모래사장과 바덴해(와덴해)가 이어졌다.

장크트 페터오르딩은 자연이 잘 보존되고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인 곳이기도 하지만, 이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페터오르딩 관광사무소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36만 명이 이곳에서 숙박했다. 이곳을 찾은 2월은 겨울인데다 바람도 많이 불었지만 관광객이 끊임없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임에도 자연이 잘 보존되고 보호된 배경엔 철저하게 구분된 보호구역과 관광구역이 있었다.

안내판에는 들어갈 수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이 표시됐고, 이를 어기는 관광객은 없었다. 특히 모래해변의 경우 반려동물의 목줄을 풀어놓을 수 있는 구역을 세분화해 표시해놓았다. 여름에 수영할 수 있는 구간, 피크닉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별도로 표시했다. 숙박시설과 음식점도 한 구역에 모여 있었다.

장크트 페터오르딩의 염습지. 신생 사구와 오래된 사구 가운데에 있다. 이 염습지는 수백 년 동안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 그대로 유지됐다. Martin Stock, WWF 제공

장크트 페터오르딩의 염습지. 신생 사구와 오래된 사구 가운데에 있다. 이 염습지는 수백 년 동안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 그대로 유지됐다. Martin Stock, WWF 제공


80%가 온전한 자연을 경험하는 것을 선호

관광객이 능동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도록 이끄는 장치도 있었다. 이를테면 복원 작업이 진행되는 사구 근처 안내판엔 멸종위기종인 도마뱀 그림과 함께 정보무늬(QR코드)가 있는데, 멸종위기종인 도마뱀을 찾아 앱에 올리라고 참여를 유도했다. 이 지역에 서식하는 도마뱀이 멸종위기라는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관광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한젠은 “환경보호 인식을 심어줄뿐더러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모니터링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시스템이 잘돼 있는 덕에 바덴해 3국을 찾는 생태관광객과 관광수입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2020년 기준 독일과 네덜란드, 덴마크의 생태관광수입은 총 64억9200만유로(약 9조4천억원) 수준이다. 벨기에의 연 관광수입과 비슷한 규모다. 장크트 페터오르딩이 있는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만 해도 연간 21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관광수입만 16억6900만유로(약 2조4천억원)고, 관광과 관련한 채용 인원은 3만5800명이다.

특별한 점은 바덴해를 찾는 관광객들의 특성이다. 바덴해 공동사무국에서 2020~2021년 바덴해 3국 관광객에게 한 설문조사를 보면, 90% 이상의 관광객이 바덴해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울러 관광객의 80% 이상이 여행지의 자연이 보호되길 바라며 온전한 자연을 경험하기를 선호했다. 또 70% 이상이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배우길 원했다. 자연을 잘 보존하는 것이 관광객을 이끌고, 이런 관광객으로 인해 자연이 더 잘 보존되는 선순환 구조다.

관광지에 사는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관광 수용에 관한 연구를 보면, 2021년 기준 주민의 10.7%만이 지역사회 관광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장크트 페터오르딩 모래해변에서 부부가 함께 이곳을 찾은 차우엔슈타인(60)을 만났다. 독일 니더작센주 브라운슈바이크에 거주하는 이 부부는 이 관광지를 찾은 것이 벌써 열 번째라고 했다. “다른 지역은 대부분 인공제방이 있지만 여긴 없어요. 이런 자연 풍경은 보통 섬에서나 볼 수 있고 내륙에선 드물거든요. 자연을 잘 보존해놨어요. 정말 조용하고 평온해요.” 그는 생태계를 보호하는 정책에 대해서도 “자연을 그대로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크트 페터오르딩이 보호구역인 동시에 유명한 관광지로 공존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축이 차우엔슈타인 같은 ‘생태 관광객’이다. 이들은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돌아간다. 정부가 아무리 철저하게 보호구역을 지정해도 시민들의 이런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존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연을 보존하고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함께하려는 관광객들의 태도는 어디서 시작했을까. 그 답을 독일의 한 박물관과 갯벌센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새 심장 소리 듣고, 고래가 되어보는 수업’ 기사(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189.html)로 이어진다.

스하우언다위벨란트·후레이오버르플라케이(네덜란드)·장크트 페터오르딩(독일)=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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