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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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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 지키거나 태양광 가거나…선택 다른 까닭은

지역 에너지 전환의 대표 사례인 신안 연구, 태양광발전 찬반 입장의 주민들 만나 기대와 걱정을 듣다
등록 2023-08-12 12:13 수정 2023-08-16 23:50
2022년 1월 전남 신안군 지도읍 내양리 태양광발전소 모습. 신안군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주민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곳이다.

2022년 1월 전남 신안군 지도읍 내양리 태양광발전소 모습. 신안군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주민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곳이다.

2022년 늦은 가을, 여러 단체가 구성한 ‘지역재생에너지연구단’에서 추진한 ‘지역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사업 신안 사례연구’에 참여했다. 덕분에 전남 신안군청, 자라도, 비금도, 사옥도, 지도 등을 방문해 공무원과 발전사업자, 주민 등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신안군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주민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행하는 곳이다. 안좌도 등의 주민들은 2021년 4월부터 분기마다 수십만원의 ‘햇빛연금’을 받고 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주민들 생각이었다. 언론에는 주로 배당금을 받게 된 주민들이 기뻐하는 모습만 나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선 태양광발전 사업에 비판적인 사람부터 열정적인 사람까지 여러 유형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신안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성 태양광 반대)”인 주민1(40대·자라도)과 “염전으로 살아가는” 주민2(70대·비금도)를 만났다. “태양광으로 가서” 발전사업체와 염전 장기 임대계약을 하고 투자 준비 중인 주민3(60대·비금도)과 “내일 지구가 망해도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태양광발전 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주민4(50대·비금도)도 있었다.

소금값 고전할 무렵 “태양광이 접수해버렸다”

연구단의 기본적 관심은 태양광발전 사업이 추진된 최근 몇 년 동안에 집중됐다. 그러나 주민들이 대화에서 언급한 시기는 400년 전 입도, 일제강점기, 1호 염전 형성 등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주민들은 그 시기에 이 섬에서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자랑거리가 만들어졌는지를 이야기했다. 주민들에게 신안은 7~9대조가 묻힌 곳이자 “조상들이 바작(소쿠리 모양의 농기구인 발채)질로 일일이 간척하고 일군 곳”(주민1)이었다. 자신의 평생이 담겨 있고 자손이 살아갈 땅이었다. 특히 비금도는 전국 최초로 염전을 조성해 천일염을 생산하며, 땅 자체가 좋아 맛있고 질 좋은 시금치인 ‘섬초’를 생산하는 곳이다. “부를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부락”(주민2)이었다. 대규모 태양광발전 사업은 이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있었다. 깊은 애착이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로 이해해야 할 것 같았다.

신안군의 태양광발전 사업은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이 그랬듯, 섬 밖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또한 섬마다 진행 양상이 달랐다. 주민 2, 3, 4가 거주하는 비금도에선 220여 가구가 오래도록 염전농사를 했다. 이들은 그간 불안정한 소금값과 인근 섬에서 발생한 ‘염전 노예’ 사건으로 인한 비판적 시선 같은 “고난”(주민3)을 겪었다. 천일염이 식품으로 법적 관리를 받으면서 염전 바닥을 친환경 장판이나 타일 등으로 교체하느라 빚지기도 했다. 수년 전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는 마침 소금값이 폭락해 이들이 고전할 무렵이었다. 주민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의사결정을 했다. 결과적으로 220여 개 염전 중 70여 개만 남고 “태양광이 접수해버렸다.”(주민2)

최근 급등한 소금값에 대해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때문”이라는 이(주민2)도, “염전의 절반이 태양광으로 갔기 때문”이라는 이(주민3)도 있었다. 염전을 하는 가구가 3분의 1로 줄면서 염전 일자리도 줄었다. 염전을 빌려 수익 배분(염전 소유주와 5:5)을 하거나, 종사원으로 일하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져 난감해했다. 섬을 떠나야 하니 그들은 “술집에 모여서 비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주민2) 태양광발전 부지로 20년간 염전을 빌려주고 받은 돈은 자식에게 주거나 빌린 영농자금을 갚는 데 썼다. 한데 “막상 할 일이 없고 아직 자녀가 대학생인데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문제”(주민3)이기도 했다.

2023년 4월26일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한 주민이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주민공유제’에 따른 첫 ‘햇빛연금’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신안군청 제공

2023년 4월26일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한 주민이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주민공유제’에 따른 첫 ‘햇빛연금’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신안군청 제공

섬의 관점서 일시적인 일, “복원 가능할지”

태양광발전 사업과 관련한 열쇳말은 염전만이 아니다. “섬의 입구부터 대규모 태양광 패널이 자리를 차지”(주민1)하면서 마을 경관이 나빠졌다. 또 섬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섬 밖으로 보내야 이익을 얻으니 변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연결해야 한다. 주민들은 “(변전소나 송전선로에서) 건강에 해로운 물질이 나와”(주민2) 젊은이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소금 생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다. 이들에게 태양광으로의 변화는 섬의 긴 시간 관점에서 일시적인 일이었다. “염전 임대가 끝나는 20년 뒤에 복원이 가능할지, 그 땅은 또 어떻게 바뀔지”(주민2) 같은 걱정도 그런 맥락이었다.

1천 개 이상의 무·유인도로 이뤄진 신안군은 전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흑산면 장도 등은 람사르습지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송전선로가 지나는 것에 여러 의견이 있었다. “RE100(전세계 기업들이 필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겠다는 캠페인)을 위해 어쩔 수 없다”(주민4)는 이도 있었지만, “갯벌보호구역, 람사르구역이라고 하면서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주민1)는 이도 있었다.

“서울에서 도심형 태양광을 하면 신안에서 안 해도 된다”(주민1)는 말처럼, 신안군의 대규모 태양광발전 사업의 쟁점은 외지인도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유엔이 2030년까지 인류 공동의 발전 목표로 정한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는 인간이 기본 수요를 충족하면서 지구상 비인간 존재와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 필요조건이다. 17개 목표 영역을 고려해보면, 신안군에서 진행하는 태양광발전 사업은 13번째 목표인 ‘기후행동’ 중 기후 완화를 위한 핵심 수단이다. 또 6번째 목표인 ‘깨끗한 에너지 확보’에도 기여한다. 하지만 염전이 태양광발전소

로 바뀌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습지나 문화재(비금도 대동염전은 국가등록문화재다) 보호 문제는 14번째 목표(해양생태계)와 15번째 목표(육상생태계)와 관련해 상쇄(trade-off) 효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지역의 경제와 일자리 구성(8번째 목표)도 변화한다. 주민 전체가 받는 배당금으로 “1년치 전기세를 공짜로 내주는 동네”(주민4)에 사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 일터로서 염전의 수는 줄고 태양광발전 사업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적다.

태양광 패널은 가전제품이 아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절차에서 강조되는 17번째 목표(파트너십과 협력)는 지역의 역량 강화와 소통, 참여를 포괄한다. 아른슈타인(S. R. Arnstein)의 ‘참여의 사다리’는 참여 수준을 ‘요식행위’부터 ‘진정한 참여’까지 여러 단계로 구분한다. 한데 신안군 태양광사업과 주민이익공유제 추진 과정은 그 수준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마을에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오는데, 주민들이 모른 채 개발 행위 허가가 먼저 난 것에 화났다”는 증언(주민1)이 그런 경우다. 군이 도로 확장 공사를 한다며 주민들에게 기공승낙서를 받아 도로점용고시가 났지만, 그 공사에 송전선로 굴착·시공도 포함됐다는 점을 알리지 않아 주민들이 항의하고 단체로 기공승낙서를 철회한 일도 있었다.

태양광사업 추진 현황이나 사업구조, 또는 이익공유제와 환경영향에 대한 이해 역시 주민마다 조금씩 달랐다. 주민3은 태양광발전 사업 투자를 고려하는데도 “자세한 내용은 전문가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 반문했다. 설명회와 공청회가 열리긴 했지만 세심한 소통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주민들로선 태양광발전 사업은 처음 겪는 일이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자연히 이를 주도하는 군청이나 사업자에 대한 의구심, 불신이 생긴다. 이를 신뢰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신안군의 개발이익공유제는 에너지 전환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과감하게 해결해가는 제도다. 햇빛과 바람이란 공유재를 이용해 발생하는 이익은 지역공동체와 공유하는 게 중요하고 당연하다는 것을 보여줘 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주민들 이야기에서 에너지 전환이 단순히 태양광 패널을 가전제품 구매하듯 할 문제가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가 익숙하던 기존 시스템의 여러 측면을 바꾸고 누군가의 삶의 지형을 바꾸는 일이었다.

2023년 7월13일 전남 신안군 비금도 내 대동염전 모습. 대동염전은 1948년 비금도 주민 450가구가 염전조합을 결성해 조성한 대규모 염전으로, 2007년 11월 신안 증도 태평염전과 함께 등록문화재(제362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전체 크기가 5분의 1로 줄었다. 류우종 선임기자

2023년 7월13일 전남 신안군 비금도 내 대동염전 모습. 대동염전은 1948년 비금도 주민 450가구가 염전조합을 결성해 조성한 대규모 염전으로, 2007년 11월 신안 증도 태평염전과 함께 등록문화재(제362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전체 크기가 5분의 1로 줄었다. 류우종 선임기자

천천히 서둘러라

인류가 오래도록 구축하고 익숙해진 시스템 때문에 기후위기가 왔다면, 그것을 위한 대안을 구상하고 그 대안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은 기존 시스템이 만들어진 과정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고려해 긴급하게 일을 진행하다보면 소홀하거나 상충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시너지를 늘리고 상쇄 효과를 줄이는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면, 굳이 에너지 전환에 많은 공력과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류의 생사 문제로 직결되는 기후위기 앞에서 에너지 전환은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과제다. 그러면서 에너지 전환은 선택과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참여의 과정이어야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의 의사결정과 권한 행사가 이뤄져야 비로소 공동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천천히 서둘러야’ 할 때다.

김남수 국토환경연구원 부원장(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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