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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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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지구생활

등록 2022-09-22 02:59 수정 2022-09-28 10:31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서울 지하철역마다 ‘9·24 기후정의행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기간에 열리지 못했던 기후 집회를 몇 년 만에 재개하느라 많은 활동가가 밤낮으로 애쓰고 있다. 사실상 첫 대규모 기후 집회였던 2019년 기후위기비상행동에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회원들과 함께 다녀온 기억이 난다. 그때 분위기에 고무돼 기후위기 시대의 기본소득 운동 비전을 찾는 워크숍을 열었다. 아이디어들을 펼쳐놓고 시동 걸던 참에 코로나19가 와버렸지만, 거리두기 속에서도 더 긴밀히 연결되고 싶었다. 서로 돌보는 역량을 키우는 시간 자체가 기본소득이 도래한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기대하면서, 다종다양한 생명들 간의 관계를 단절시켜 상생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자본의 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고민 속에 북클럽을 열었다. 이름하여 ‘기후위기 말하면서 기본소득 말하기’. 온라인으로 진행했기에 서울과 세종, 경기도 그리고 헝가리와 독일에 살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함께 네 권의 책을 읽는 동안 각자가 감각하는 기후위기의 여러 얼굴을 공유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상과 쉼, 삶과 죽음, 유년시절과 나이듦, 두려움과 용기, 변화를 위한 운동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본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욱 빈번해질 자연적, 사회적 재난에 기본소득처럼 모두를 위한 조건 없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했다.

슬랙에 둥지 튼 ‘온전한 마을’

북클럽이 끝난 뒤에도 헤어지기 아쉬웠던 우리는 함께 읽은 <전환도시>(이유진, 2013)에서 영감 받아 만든 온라인 전환마을, ‘온전한 마을’에 입주했다. 전환마을이란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을 지역에서부터 실천에 옮기는 공동체 운동이다. “위협과 공포심이 아니라 삶의 방식 전환을 통한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는 지역이 모두 달랐던 우리는 전환마을 운동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도시나 마을 이전에 개인들을 느슨하게 연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온라인을 떠올렸다.

‘슬랙’이라는 메신저 안에 각자의 집(채널)을 열고, 도서관이나 회의장 같은 공유 공간을 만들었다. 2021년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가장 중요한 안건이었던 ‘도토리 반상회’를 꾸준히 열며 이웃과 함께 토종 씨앗을 나눠 심거나 제로웨이스트(쓰레기 배출 최소화)에 도전하는 등 작은 실천을 이어갔다. 바뀌지 않는 자신과 사회를 볼 때 느끼는 좌절감도 자주 공유했지만, 아마 혼자 했다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의 온전함을 지지하는 대화에는 힘이 있다. 혼란한 시기에도 위기감에 압도당하지 않게 해준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기후위기는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여타 운동과는 다른 시간 감각을 요한다. 삶의 방식과 미래 계획을 재구성해야 하므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나갈 우리에겐 공동체가 필요하다. 온라인에서든 광장에서든 선택한 가족을 통해서든, 함께 만들 공동체 안에서 서로 기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나를 지지해줄 우리가 필요해

얼마 전 ‘온전한 마을’에 아기가 찾아왔다. 이 지구에 새 생명을 초대하는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게 고민하던 이웃이 엄마가 됐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기후위기로 연결된 우리 마을은 이 아기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세상의 아기들에게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 사람들로 이뤄진 세계를 보여주는 건 어떨까? 우리 같이 기후행진에 가자.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의 ‘어울린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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