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선생’이 싫다. 아니 미워했다. 내 주위의 좋은 교사들이 떠오르지만, 그들에게 미안하게도 취약했을 적 기억이 더 오래 남았다. 매를 맞던 학생이 무릎을 꿇다 못해 엎드려 빌고 빌어도 매질을 멈추지 않던 수학 교사. 체육복을 제대로 안 입었다고 귀싸대기를 날려 고막 손상을 입힌 체육 교사. 굳이 교복 치마를 들쳐 허벅지를 때리던 남자 교사.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종종 그들이 생각났다. 그들만 떠오르면 다행인데, 다른 얼굴도 기억에 함께했다.
엎드려 빌던 아이의 비명이 복도에 울리는데도 문밖에서 우리를 힐끔 보고 지나쳐갔던 교사. 체벌과 성추행은 복도 한복판에서 빈번하게 벌어졌기에 그때마다 장면을 목격한 다른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교사는 방관자였다.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직장인 교사들의 처지를 이해했다. 하지만 그들을 용서한 건 아니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내게 준 교훈에 있었다. 우리를 지나쳐가는 시선에서 배운 것이 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내가 배운 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향한 불신이었다.
스쿨미투를 거치며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사들을 보았지만, 여전히 ‘그때 그 시절’ 교사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미워하지 않게 된 것은 지혜복 선생님의 사건을 알게 된 뒤다.
2023년 5월, 중학교 사회 교과 교사인 지혜복은 학생들과 상담 중 교실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2년간 지속된 사실을 알게 된다. 지혜복은 학교에 사건을 알린다. 하지만 사건 조사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 학생들의 신원이 유출되고, 2차 가해마저 심각해졌다. 학교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결국 지혜복은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넣는다.
그게 이유였을까. 사건이 폭로되고 반년 뒤, 지혜복은 전보 발령을 받는다. 피해 학생들이 존재하는 학교를 떠나라는 이야기였다. 학교는 보복성 전보라는 주장을 일축했지만, 발령 선정 기준을 납득할 수 없었다. 지혜복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다. 출근 대신 시작한 1인시위가 250일을 넘겼을 때, 그는 징계위원회에 소환된다.
학교는 여전히도 폭력의 공간이다. 딥페이크 성폭력 범죄는 이 사실을 확고히 해준다. 폭력의 경험은 저마다의 교훈을 남긴다. 내가 바란 건 방관자 교사들을 계속 미워하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교실에 있는 이들이 그 시절 나와 다른 교훈을 얻길 바랐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니 미웠을 뿐이다.
“정말 미안하다. 지금부터는 선생님과 같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지혜복 교사가 사건을 알고 피해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고충을 겪더라도 버텨주는 사람이 있다. 지혜복의 학생들은 이것만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 테다. 지혜복을 알게 되고 나의 미움도 크게 수그러들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것도 저 말이었으니.
지혜복이 본래의 학교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실에 있는 이들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과 무관하게 징계는 내려질지 모른다. 파면, 해임, 정직…. 그렇지만 그때의 취약하기만 한 내가 아니다. 누군가 우리를 구해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용화여고 창문에 ‘미투’ 메모가 붙었을 때, 더는 기다리지 않는 학생들을 보았다. 징계가 열리던 시각, 지혜복의 징계를 바라지 않는 동료 교사, 교육노동자, 시민들이 모여 손팻말을 드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보고 배워 조금은 굳건해졌다. 이제는 결과가 무엇이건, 함께할 수 있고 알릴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쓴다.
희정 기록노동자·‘뒷자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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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