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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엔 절대 안 간다” 임종 앞둔 어르신의 마지막 의지

등록 2024-08-02 21:15 수정 2024-08-06 14:22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나 병원 절대 안 가.”

오랜만에 만난 어르신의 첫마디였다. 길순(가명) 어르신 보호자에게 연락이 온 건 거의 2년 만이었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어머님이 상태가 안 좋으신데 한번 와주시겠어요?” 2년 전 몇 차례 진료하고 필요한 처치를 해드린 뒤에는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다. 연락처가 저장돼 인사했지만 바로 생각나진 않았다. 진료 기록을 찾아보고 어르신을 떠올려봤다. 상태가 어떤지 보호자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고 한번 와서 봐주셔야겠다고 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생각하며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찾아뵙기로 했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당사자 선언

어르신 댁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니 여기였구나 하고 2년 전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오래된 단독주택에 올라섰다. 전에는 집 안에서 거동했는데 이번엔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계셨다. 잘 먹지 못하고 다리도 부어 있었다. 보호자 말씀대로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어르신은 나를 알아보고는 연신 병원에 안 가겠다는 말씀을 반복했다. “잘 알겠어요. 병원에 안 가신다고 해서 제가 왔어요.”

어르신을 살펴보고 보호자에게 그간의 사정을 들었다. 별일 없이 지내다 몇 주 전부터 상태가 나빠졌다고 했다. 90대 중반인 어르신은 특별히 드시는 약도 없고 병원도 가지 않고 지냈다. 보호자 대신 동네 병원에 가서 몇 가지 약을 처방받아 왔다. 보호자에게 조심스럽게 단순히 치료될 정도의 증상은 아닌 것 같고 정밀검사와 치료를 위해서는 대학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보호자는 어르신이 병원에 안 가시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니 억지로 병원에 가기는 힘들고 내게 뭐든 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심스럽게 어르신이 회복하시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준비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보호자도 동의하며 다른 친지들에게도 연락해서 주말 사이 찾아오셨다고 한다. 보호자도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일단 검사해보고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날 어르신을 다시 찾아뵈니 어르신은 나를 보자마자 병원에 절대 안 간다는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검사 결과는 좋지 않았다. 쉽게 교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증상 완화를 위한 약을 드리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어르신과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니 마지막 시간을 소중히 보내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이틀 지나고 이른 아침 보호자에게 연락이 왔다. 찾아뵙고 살펴보니 임종하셨다. 애도하고 사망선고를 했다. 나도 보호자도 어르신이 이렇게 빨리 임종하실 줄은 몰랐다. 어쨌든 어르신 의중대로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어르신은 자신의 미래를 어렴풋이 짐작하셨던 것 같다. 장례를 마치고 보호자는 감사하다며 연락을 주셨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따뜻한 진료를 해주시라고 응원 문자 또한 남겨주셨다.

보호자가 보내온 감사·응원 문자

문자를 보며 고맙고 또 뭉클했다. 하지만 어르신께 최선이었는지 자문해보면 고민할 지점이 많다. 사실 딱히 뭘 해드린 것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르신은 스스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또 그대로 실천하셨다. 길순 어르신을 보며 생애 말기에 꼭 의료에 의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삶이 꼭 의료적 실천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조금 더 당당하게 삶에 맞서고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볼 수 있다. 환자분들을 만나며 또 죽음을 마주하며 의사인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온갖 걱정과 고민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분들께 조금의 위로를 드릴 수 있다면 내 역할은 그걸로 족하다. 다만 보호자의 문자처럼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따뜻한 진료를 하려면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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