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두고 ‘희대의 사랑꾼’이라고들 한다. 그저 농담이 아니다. ‘대통령의 아내 사랑은 필부와 달리 차가워야 한다’는 근엄한 충고가 일간지 오피니언으로 실리는 판이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모든 혐의가 악의적 프레임이자 정치공작이라는데, 사실 ‘사랑꾼 대통령’ 프레임이야말로 문제적이다.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상당하다.
일단 사랑꾼 타령은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윤 대통령을 ‘애처가’로 부르면 자기 여자 지키는 상남자가, ‘아내 바보’로 부르면 집안 단속도 제대로 못하는 천치가 된다. 김 여사는 큰일 하는 남편의 앞길을 막는 어리석은 아내로 현신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가부장제의 낡은 논리를 두둔한다. 여기에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이들이 있으니, 김 여사가 새벽에 남자들과 문자를 주고받는다거나, 아무개를 오빠라고 부른다더라는 말을 앞다퉈 던지는 정치인들이다. 야당의 청년 최고의원부터 정치 9단까지 경쟁하듯 여성혐오를 부추긴다. 아내가 남편에게, 여성이 국가 또는 성별 분업구조에 의탁해 ‘부당한’ 혜택을 얻는다는 ‘부당한’ 논리가 혐오를 정당화한다.
또한 사랑꾼 타령은 범죄의 본질을 은폐하고 축소한다. 3년 전, 홍준표 의원이 조국 전 장관을 두고 ‘각시’를 감옥에 보냈으니 ‘사내새끼’도 아니라고 호통쳤던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런 말은 정작 그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잊게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차치하더라도 김건희 여사는 분명 청탁금지법을 어겼고,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금품을 받은 경우, 공직자는 이 사실을 즉시 신고해야 하는데 그가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밝혀졌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법 행위다. 범죄 피의자들을 두고 천생연분이라거나 사랑꾼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보통 정범과 종범이라고 한다. 공범은 국민권익위원회다. 국민 다수가 납득할 수 없는 종결 결정을 내렸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신고건 법정 처리 시한(60일)을 한참 넘겨 116일 만에 처리했다. 휴대전화까지 제출하고 비공개 출장조사를 나간 서울중앙지검은 아직 졸개도 못 되는 처지다.
끝으로 정치가 증발한다. 내용은 없고 형식만 남은 조롱은 유효기간도 짧고, 효과도 미미하다. 윤 대통령 부부를 보니와 클라이드에 빗대기까지 한 냉소가 이미 온라인에 가득하다. 세련되고 편리하며 일견 힙해 보이기까지 하는 지금의 반응은 정치적 입장을 그저 단순히 스타일에 머물게 한다. 스타일로만 남은 정치는 현실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권익위의 공정성을 요구하지 못하고, 국회와 검찰의 태만을 단죄하지 못한다. 특검법 발의, 검찰 수사, 권익위 조사, 김건희-한동훈 문자 공방, 제2부속실 설치안 등 정치적 제스처만 요란할 뿐이다. 무엇을 잘못했고, 누가 더 연루됐으며,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따따부따 따져 물을 공론장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
대통령은 휴가 때 들고 가는 책 리스트조차 (실제 독서 여부와 관계없이) 메시지가 된다. 사실 세상 어떤 경우도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 둘은 언제나 뒤섞이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결국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공사 구분을 못했던 이들은 대통령 내외뿐이 아니다. 대통령을 향한 놀림인지 우려인지 모를 세상의 사랑꾼 타령 또한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안일하고 본질을 오도한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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