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이 노랫말을 절실하게 이해하는 순간이 올 줄이야. 친구들끼리 모이면 이런 말을 한다. “그땐 어떻게 밤새워 놀았지?” 지금은 전날 잠만 설쳐도 다음날 골골거린다. 사람 많은 곳엔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번잡하다. 얼마 전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있었다지. 100만여 명이 모였다는데, 하늘의 아름다움보다 지상의 북적임이 먼저 떠오른다.
몇몇 언론은 불꽃축제를 두고 ‘흥행 성공’이라 했다. 사람들은 즐거웠겠다. 불꽃 아래서 데이트하고, 사진을 찍고. 먼 훗날, 함께 손잡고 공연을 본 이를 그날 온도와 냄새로 떠올리게 될까. 그날의 냄새라… 매캐하겠지.
폭죽이라 하지만, 폭약과 흡사한 성분이다. 불꽃축제를 주최한 ㈜한화의 본래 이름은 ‘한국화약’. 쏘아 올린 화약, 아니 폭죽에는 이산화질소, 산화질소 등 유독 물질이 포함돼 있다. 공중에서 분사된다. 행사 직후 측정한 미세먼지 수치도 평소보다 10배나 높았다. 100만 명의 폐는 괜찮은 거겠지? 이래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하나보다. 장기가 튼튼할 때 놀아야 한다.
한화가 매년 불꽃축제에 쓰는 비용은 100억원가량이다. 요즘 말로 ‘플렉스’(Flex)다. 화약 제조 부문의 한 해 매출이 조 단위니, 한화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다. 가성비 좋은 홍보라 생각하겠지. 이날 불꽃은 아름다웠을 게다. 정교하기 때문이다. “화약이 군사용으로 정교해져온 것과 동시에 불꽃놀이도 정교해져온 것”(문아영 피스모모 대표)이다. 정밀한 폭죽 기술은 정밀한 발사 기술을 의미한다.
서울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일 때 우크라이나에선 의혹이 일었다. 러시아가 ‘모든 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강력한 폭약 FOAB(Father of All Bombs)를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우크라이나 북동쪽 마을 보우찬스크가 거대한 섬광으로 뒤덮이고 하얀 버섯구름이 치솟았다. 그때 보우찬스크 하늘과 서울 하늘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한강 작가의 말대로 “세계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조용히 하자”. 때로 놀이를 멈추는 일이 세계에 이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노는 건 포기 못하지. 여기 놀고 싶다는 이들이 있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이태원을 둘러싼 사람들을 기록한 프로젝트 명칭이다. 10월29일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야 하나 싶을 때, 이 이름을 보았다.
그런데, 논다고? ‘놀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비난이 있는데 또 놀자고?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하다. 핼러윈 축제에 놀러 간 것은 사고의 책임도 묻지 못할 일인데, 왜 불꽃축제에 백만 명 단위가 몰린 건 ‘흥행 성공’일까. 기업이 돈을 뿌리고 지방자치단체가 홍보하는 공간에서만 우리는 놀이를 허락받는 걸까.
“이태원의 핼러윈은 지역 잔치였다.” 용산 주민 이상민씨의 말을 빌린다. 핼러윈 날이 되면, 집마다 호박 장식이 걸리고 동네 놀이터에서도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축제의 흥겨움 사이로 만나는 이들은 낯설고 다른 이가 아니라 고유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 환대의 순간을 그리워한다. 그러니 다시 놀고 싶다. 이상민씨도 이태원 참사 2주기 축제 ‘멈추지 않는 노래를 해’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가 “더 많은 연결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바라며 함께 놀자고 한다. 이곳이 슬픔과 혐오로 멈추지 않게.
여전히 마을이 있고, 사람이 살아가고, 손님이 찾아온다. 그리고 애도하는 이들이 있다. 더해지고 연결된다. 숨죽이지 않는다. “세계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하기에 노래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놀아야 할까. 역시 노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희정 기록노동자·‘뒷자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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