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원고 ‘엄마, 내가 미치고 있는 건가요?’가 2023년 12월25일 한겨레21 제1494호에 게재됐다. 이 글은 2023년 12월29일치 한겨레 사회면에도 실렸다. ‘11살에 온 조현병, 폐쇄병동 입원날 “엄마, 엄마, 엄마”'라는 제목으로. 포털 기준 좋아요가 1406건으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좋아요 중 후속강추가 995건으로 가장 많았고, 공감백배가 336건으로 그다음이었으며, 댓글은 270개가 달렸다.(2024년 1월16일 기준)
2주일 뒤 두 번째 원고가 한겨레21 제1496호에 실렸다. ‘아이는 정신병동에서 춤을 배웠다’라는 제목이었다. 첫 번째 글에 비해 조회수나 댓글은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가 읽었다. ‘소아조현병'이라는 소재가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14화까지 꾸준히 많은 독자가 이 연재를 읽고 공감해줬다.
나는 이 기사들의 댓글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도 자꾸 눈이 갔다. 독자들의 반응도 궁금하고 어떤 마음으로 댓글을 쓰는지도 궁금했다. 댓글을 하나씩 읽으며 격려하고 응원하는 글은 마음에 담아두고, 비난의 말들은 모니터 뒤로 숨기려 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됐다. “엄마가 문제네.” “위험한 인물이네.” 이런 식의 댓글들. 그 말들이 나의 심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잊자. 신경 쓰지 말자.’ 나가서 산책하기로 했다. 1년 전 우리 곁을 떠난 하늘이를 생각하며 북한산 자락길을 걸을까? 아니면 오리 이웃들이 안녕한지 살피며 홍제천을 걸을까? 걷다보면 잊을 것이다. 그까짓 말들 단련될 때도 되지 않았나.
나무의 병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한 줄 글도 쓰지 못하던 시간을 지나 ‘조현병’을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 터널을 빠져나와 나무가 자신을 돌보고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기까지. 질병이, 조현병이 나무의 일부가 되기까지.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17년이라는 숫자에 놀란다. 버티려고 버틴 것이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보냈고, 그 시간이 쌓인 것일 뿐. 그 시간을 보낸 힘은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등 나무와 우리 가족을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 나무를 지지하고 돌봐준 간호사와 의사들, 도와주려고 애쓴 교사들, 자전거를 함께 탄 옆집 아저씨와 말을 걸어준 윗집 할머니.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17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있었으면 우리가 덜 외로웠을까?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붙잡아줬을까? 우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소아정신질환 지원 체계다. 지방자치단체 보건소 산하 센터로 지역 병원에 위탁하거나 드물게 지자체가 직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성인 대상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된다. 정신병 발병 연령이 낮아지고 있고, 소아청소년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한국 사회에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은 중요하다. 겸직 의사가 센터장이고 간호사 한두 명에 사회복지사 몇 명으로 운영되는 센터가 100명 중 1명이 발병하는 지역의 조현병 환자들과 그의 가족을 지원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소아조현병의 특수성을 반영하기엔 더더욱 어렵고, 예산은 항상 부족하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하는지가 중요한 법. 조현병 환자도 함께 살아가야 할 시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지역 센터 운영 여건이 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학교 교사, 특수교사, 보건교사의 소아정신병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소아정신병 임상경험이 쌓인 의료진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 소아조현병은 성인기 발병 조현병보다 불량한 치료 반응의 특성을 가진다. 뇌 발달이 충분하지 않은 나이에 발병할수록 심한 손상을 받아 치료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학교와 병원,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협력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장애가 있거나 있지 않거나, 모든 아이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이 아이가 나만의 아이인가. 가족이 이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방치하지 말고 사회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게 이 시간을 거쳐온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질병도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고,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10쪽)
조현병이 나무에게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행복하기만 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나무와 우리 가족은 조현병을 통해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삶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아서 프랭크는 질병이 기회라고 했다. 아픈 몸을 사는 것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가고, 그 경계에서 삶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한다고. 역시 그렇다.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되었다.
조현병을 만나기 전보다 조현병을 만나고 나서 우리 삶은 풍부해졌다. 인간은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죽음에 이른다. 우리는 질병을 통해 질병 전의 과거를 애도하고, 현재의 사랑을 배우고, 고통을 지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넓은 아파트, 좋은 대학, 대기업 취업, 높은 연봉, 이런 것 말고. 불안이 밀려오지 않는 시간에 감사하고, 머리 맞대고 밥 먹는 순간을 사랑하고, 손잡고 산책하는 길의 단풍에 감동하고, 우리에게 호혜를 베푼 이들을 기억하고. 그것이면 되지 않았나.
그러니 또 조현병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무의 일부로, 우리 일상의 한 부분으로. <끝>
윤서 여성학 박사
*조현병 환자와 그의 가족이 덜 외롭길 바라며 시작한 이 연재를 마칩니다. 조현병은 생각보다 흔한 병이고, 조현병은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으며, 조현병 환자도 함께 살아가야 할 시민이랍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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