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서울대 로고를 지겹도록 본다. 서울대 발전재단이 서울대생 학부모들에게 차량용 스티커를 배포한 일 때문이다. 스티커 문구가 적나라했다. “I AM (SNU) MOM” “I AM (SNU) DAD”(나는 서울대생 엄마·아빠입니다). 덕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타임라인을 서울대 로고가 가득 메웠다. 비판하기도 비난하기도 좋고, ‘공정 경쟁’ 담론으로 확장하기도 좋은 소재다. 그렇다면 나는 ‘고졸’ 이야기나 해야겠다. 온 세상이 서울대라면 그 학부모들 행보까지 아는데, ‘고졸 청년’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는 도통 모르니. 몰라도 이야기해야겠다.
2021년 기준, 한 해 배출되는 고교 졸업생 중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이는 12만여 명이다. 대입 수능 미응시자 수는 4만여 명. 이 수치로 ‘고졸 청년’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순 없지만, 이건 알겠다. 서울대 입학생은 3400여 명. 서울대생보다 몇십 배나 많은 수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한 해 고교 졸업생이 40만 명 정도이니 열 명 중 두엇은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이라는 건데,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을 본 적 있던가. 요사이 나는 서울대 졸업생도, 석박사 학력 소지자도, 유학생도 봤다. 이주민도, 난민도, 성소수자도, 쪽방촌 주민도 만났다.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을 만나 취재하는 일이라 그런다. 그런데 대학(졸업)생이 아닌 청년을 만난 적이 있던가. 기억이 없다. 내 쪽에선 당연히 ‘대학생’이라 여겼을 테고, 그쪽은 굳이 말하지 않았을 테다. 존재하지만 보이질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없는 취급이다. 간혹 선거 기간이나 청년 취업난 특집 기사에 불현듯 소환되기도 한다. 이땐 각종 숫자로 치환된다. 고졸 취업자 임시·일용직 비율 34.3%, 대졸과 임금 격차 38.3%(2022년 기준이다). 이 숫자는 고졸 이하 청년이 저임금·불안정 노동시장에 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것으로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발화하는지 알 순 없다.
사람은 동류 집단을 이루며 산다. 아무리 세상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해도, 개인이 온 운동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사는 곳의 평평함만을 감지하며 산다.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냉소하든 서울대생 아빠·엄마 스티커를 붙인 차량이 주차하는 곳은 서울대 교정이다. 그들이 돌아갈 집은 강남이나 경제적 사정이 엇비슷한 도심권 아파트 단지다. 그들이 돌아다닐 길은,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게 이상하지 않은 사회다.
이 안일하고 균일한 집단에 필요한 건, 난입이다. 난입. 허가받지 않고 뛰어들어 존재를 보이는 일. 서울대 욕망 사회에 ‘고졸’ 존재들이 난입하길 바란다. 존재를 드러내고, 말하고, 냉소도 비판도 비아냥도 이들 몫이었으면 한다. (유치한 것을 안다만) ‘나는 고졸이다’ 스티커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나는 서울대생 아빠·엄마’보다 더 내 눈에 거슬린 것은 ‘자랑스러운 부모’라는 문구였다. 자녀라는 인적 자원을 둘러싼 가족 단위 투자가 서울대 입학이라는 배당으로 돌아왔다는 자랑스러움. 가족이라는 틀을 벗어나 ‘나는 고졸 친구다’ ‘나는 고졸 회사 동료다’ ‘나는 고졸 옆집 사람이다’ 같은 문구도 좋을 일이다. 어떠한 자리에서건 목소리를 낼 이들을 기다린다.
희정 기록노동자·‘뒷자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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