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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금광, 쓰레기 전쟁이 시작됐다

자원순환 요구하는 소비자 늘고 유럽연합 등 무역규제 강화돼 재활용 시장 뛰어든 대기업들
등록 2021-08-01 17:04 수정 2021-08-03 16:11
쓰레기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으로 꼽힌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포장재에 재활용 원재료 50%를 사용할 계획을 내놓았다. 기업의 가치를 올리고 소비자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스위스의 한 슈퍼마켓에 쌓여 있는 코카콜라 모습. 연합뉴스

쓰레기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으로 꼽힌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포장재에 재활용 원재료 50%를 사용할 계획을 내놓았다. 기업의 가치를 올리고 소비자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스위스의 한 슈퍼마켓에 쌓여 있는 코카콜라 모습. 연합뉴스

출발은 소비자였다. 2019년 10월 미국 시장조사기관 엔피디(NPD)그룹은 미국 소비자의 9%는 식품이나 음료를 구입할 때 환경을 고려해 소비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예를 들어 미국 성인 10명 중 1명인 약 2천만 명은 친환경 포장재를 쓰는 브랜드의 제품을 샀고, 테이크아웃(포장)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 친환경 용기를 쓰는지도 따져본다는 소비자가 3분의 1이나 됐다는 것이다. 이후 코로나19 유행과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세계적으로 가장 효능감 좋은 환경운동·기후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초 한국에서도 소비자운동을 이끌었던 아이쿱생협이 기후보호의 하나로 쓰레기 줄이기 운동을 시작했다.

코카콜라 “2030년 포장재에 재활용 50% 사용”

소비자의 변화는 기업들의 생존 전략 마련으로 이어졌다. 2020년 각국의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참여하는 ‘전세계 쓰레기 브랜드 조사’에서 쓰레기를 가장 많이 배출한 기업으로 꼽힌 코카콜라(51개국, 1만3834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2021년 5월31일 서울에서 열린 ‘2021 피포지(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제임스 퀸시 코카콜라 회장은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쓰고, 식물 기반의 포장재를 개발해 병 무게를 줄이고, 2030년까지 포장재에 재활용 원재료 50%를 사용할 계획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제품 개발 위주로 신경 쓰던 식품기업이 기업의 가치를 올리고 소비자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포장부터 바꾸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2025년부터 페트병의 생산과정에서 재활용 원료 비율을 25% 이상 함유하도록 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기업의 필수 조건이 된 시대에 기업의 ‘자원순환·재활용’은 소비자의 요구이자 거부할 수 없는 무역 규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산업구조 개편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포장재나 섬유를 만드는 석유화학 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재활용 원료를 사용한 포장재나 섬유, 생분해 포장재 등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재활용 시장이라는 미지의 금광이 열린 셈이다.

폐기물 처리 시장 성장세… 매출 연 7% 껑충

한화솔루션은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기반 ‘나프타’(플라스틱 기초연료) 생산기술 사업의 주관 기업으로 선정된 뒤 2024년까지 기술 개발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SK종합화학도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새로운 플라스틱 원료를 만드는 기술 개발과 기업과의 업무협약(MOU) 체결 등 시장 확보에 매진한다. LG화학도 화장품 용기로 사용된 자사 플라스틱을 전용 물류시스템을 통해 수거하고 다시 원료로 재활용하는 식으로 자원순환에 공들인다. 이런 기대감 속에 국내 폐기물 처리 시장 규모도 성장세에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전국 사업체 조사를 보면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원료 재생업’에 종사하는 사업자들의 합산 매출액이 2016년과 비교해 2019년에는 24% 껑충 뛰었다. 연평균 약 7% 이상이다. 기술력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수십 년을 일군 기업을, 직장을 잃는 이들이 생길 수도 있다. 최근 <한겨레>와 만난 경기도 화성의 한 중소 재활용업체 대표는 35년 넘게 일한 이 업계의 지각변동이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프타’를 대량으로 얻기 위해서는 기존 중소기업 중심의 회수·선별·재활용 전문 업계에 대기업이 직접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내놨다. 소비자 홍보도 되는데다 무역 규제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20년 이래 SK건설, 보광산업, IS동서 등이 폐기물처리 기업, 폐플라스틱 업체 등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외국계 사모펀드도 기업보다 먼저 폐기물 업체들을 매입하고 있다. 기업이 괜히 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자원순환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변화는 양면이 있다. 영세한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자본이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재활용산업은 99%가 중소기업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은 5명 미만의 영세기업이다. 시설 개선과 기술개발 투자가 미흡해 주민들이 열심히 분리배출을 해도 회수·선별 과정에서 버려지는 자원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고물상, 영세 회수업체, 회수·선별업체, 재활용업체 등 수천 개의 중소기업이 겹겹이 쌓인 기존 재활용산업이 일시에 개편될 경우, 다른 산업들이 그랬듯 눈물짓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남는다.

기술개발 촉진 vs 눈물짓는 영세기업

이 때문에 동반성장위원회는 상생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협력 중소기업의 ESG 활동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대기업의 참여 확대를 검토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현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중소 재활용업체 대표는 “대기업 여러 곳과 만났지만 기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계획보다는 직접 인수하는 쪽에 쏠려 있다. 환경부도 대기업이 직접 쓰레기를 치워주니 중소기업의 사정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느낌이다”라고 설명했다. 쓰레기가 돈이 되자, 돈이 되는 쓰레기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최우리 <한겨레> 기후변화팀장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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