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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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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헌 옷 줄게, 환경 지켜다오~

의류폐기물 가득한 바다, 풀 대신 옷 씹는 소들에 충격
안 입고 쌓인 옷들 열린옷장과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해보니
등록 2021-08-08 06:38 수정 2021-08-10 01:56
취업준비생 등에게 면접용 정장을 대여해주는 사회적기업 ‘열린옷장’에서 청년들이 기증된 정장 가운데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직접 입어보며 고르고 있다.

취업준비생 등에게 면접용 정장을 대여해주는 사회적기업 ‘열린옷장’에서 청년들이 기증된 정장 가운데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직접 입어보며 고르고 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어쩌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휴가나 경조사 등 특별한 일을 앞둔 때 새 옷은 언제나 옆에 있었다. 반복된 일상에 지칠 때면 근처 스파(SPA)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구경하는 게 즐거움이기도 했다. 딱히 ‘계획된’ 소비는 아니더라도 1만원 안팎 하는 티셔츠 한 장 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옷장을 비집고 나오는 옷을 정리해볼까 하는 마음이 종종 들었지만 중고 거래는 귀찮아 미루기 일쑤였다.

부끄럽게도 옷을 사면서 환경을 함께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옷은 막연하게 어디선가 재활용될 거라 생각했다. 배달음식을 줄였고, 텀블러를 챙기고, 분리배출할 땐 꼼꼼하게 씻어서 내놨다. 이 정도면 나름 ‘환경을 고민하는 것 아닌가’라며 자못 뿌듯해했다.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된 물품을 분류하고 가격을 책정해 재생산하는 되살림센터. 이곳에서 서울의 아름다운가게 매장 28곳으로 물품이 배송된다.

‘아름다운가게’에 기부된 물품을 분류하고 가격을 책정해 재생산하는 되살림센터. 이곳에서 서울의 아름다운가게 매장 28곳으로 물품이 배송된다.

티셔츠 1장에 이산화탄소 2.3㎏ 생성

생각이 완전히 바뀐 건 2021년 7월1일 방송된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편을 보고 나서다. 장면마다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대한 헌 옷 무덤에서 소들이 풀 대신 옷에서 나온 합성섬유 조각을 씹었고, 방글라데시의 운하나 가나의 바다엔 의류폐기물이 가득했다. 헌 옷이 재활용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뒤이어 읽은 책 <물건 이야기>(김영사)를 통해선 값싼 의류를 위해 인류가 환경에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알게 됐다. 면티셔츠를 만드는 면화는 재배 과정에서 물을 많이 낭비하는 작물인데다 농약도 여러 차례 사용된다. 수확할 때는 흰 면화솜에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잎을 미리 떼는데, 이때 독성 화학물질이 쓰인다. 이뿐이랴. 하얗게 만들기 위해 강한 표백제도 쓴다. 면은 염색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염료 3분의 1이 폐수로 들어간다. 더 부드럽게, 구김이 덜 가게, 정전기가 나지 않게 하는 과정에는 화학물질 포름알데히드가 더해진다.

저자인 환경학자 애니 레너드는 “내 티셔츠 한 장에 필요한 면화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0.9㎏이 생성”되고 “세척, 방직, 방적, 마무리 공정에서 추가로 1.4㎏이 생성된다”고 지적한다. 물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별도다.

환경을 고민한다며 내심 자부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옷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일단 입지 않는 옷을 기증해 옷장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옷을 기부할 곳을 찾았다. 아름다운가게, 열린옷장, 옷캔, 굿윌스토어 등 여러 곳이 나왔다. 옷장을 둘러보니 다 담지 못해 삐져나온 옷부터 눈에 띄었다. 택배로 주문한 뒤 포장을 채 뜯지 않은 옷도 있었다. 언제 입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옷도 꽤 있었다.

주섬주섬 챙겼다. 충동적으로 샀지만 막상 손이 가지 않던 셔츠, 취업준비생 때만 입고 그 뒤론 한 번도 입지 않은 정장, 한 번만 입고 걸어둔 원피스, 더 이상 사이즈가 맞지 않는 바지들부터 골라냈다. 기준은 ‘내가 입진 않지만 남이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괜찮은 옷’이다. 니트, 청바지, 티셔츠 등 캐주얼한 의류는 총 20벌, 정장은 10벌 정도 쌓였다.

아름다운가게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 제품. 유행이 지나 더는 입지 않는 청바지로 만들었다.

아름다운가게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 제품. 유행이 지나 더는 입지 않는 청바지로 만들었다.

정장 기증할 때 핵심은 옷의 ‘청결’

2021년 7월12일, 우선 정장을 기증할 수 있는 ‘열린옷장’을 찾았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열린옷장엔 취업 등을 위해 정장 대여를 예약해둔 청년 여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2012년 정장 대여 서비스를 시작한 뒤 현재까지 15만 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김소령 열린옷장 대표는 “전체 정장은 3천 벌 정도 있고 구두·넥타이·셔츠 등을 합치면 1만2천 점 정도 있다. 사이즈 문제로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아주 작거나 큰 사이즈는 직접 제작해 채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대여 공간 안쪽으로 들어서면 백화점 정장 매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성별에 따라, 종류에 따라 옷이 걸려 있고, 피팅룸 앞 거울에 정장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이들도 삼삼오오 있다.

이곳에 정장을 기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청결함’이다. 정장의 트렌드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김 대표는 “대여자들이 정장을 입고 자신감 있게 면접에 갈 수 있도록 ‘누가 입었던 옷’이라는 점이 안 느껴지도록 한다. 유행에 뒤처진 옷은 바지통 등을 수선해 대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기증받는 정장의 기준은 꽤 까다롭다. 착용한 적이 한두 번이거나, 심지어 사놓고 입지 않은 채 보관만 해둔 옷도 함께 가져갔는데 모든 옷이 열린옷장의 검수 과정을 통과한 건 아니다. 실제로 기증 며칠 뒤 “블라우스 1벌, 재킷 1벌, 스커트 1벌 정도만 열린옷장에서 사용되고, 나머지 재킷 3벌, 원피스 1벌, 팬츠 2벌, 스커트 1벌은 옷캔으로 재기증된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기증받은 옷이 계속 쓰이는 방법을 고민해요. 평균 26.4살 청년들이 입어야 하니까 스타일이 맞지 않지만 깨끗한 상태의 옷은 옷캔으로 재기증해요. 일부 옷은 골라서 노숙인 자활센터인 서울특별시립비전트레이닝센터로 보내기도 하죠. 너무 화려한 무늬의 넥타이 같은 건 업사이클링(새활용)을 하는 곳에 원단으로 활용하라고 보내고요.”(김소령 대표)

열린옷장의 또 다른 특징은 기증자와 대여자가 서로를 향한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이다. 대여자는 기증자의 메시지를, 기증자는 대여자의 답장을 받을 수 있다. “대여자분들은 기증자의 메시지를 읽고 힘을 받죠. 이후 취업해 자신도 도움이 되고 싶다며 정장을 기증해준 분도 있고요.”(김소령 대표) 좋은 기운을 담뿍 담은 옷이 선순환하는 셈이다.

1년에 220만 벌이 재사용으로 판매돼

이번엔 캐주얼 의류를 기부할 차례다. 7월14일 아름다운가게 송파가락점을 방문했다. 지구의 날인 2021년 4월22일 오픈한 곳으로 아름다운가게 서울 매장 가운데 가장 크다. 하루 평균 15~20명이 평균 300~350개 물품을 기증한다. 방문자는 하루 평균 200~250명이다.

아름다운가게를 알고는 있었지만 기부는 처음이다. 근무하는 봉사자들이 기부 물품을 일일이 검사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는데 웬걸, 비치된 정보무늬(QR코드)를 촬영하면 접수도, 기부영수증 신청도 손쉬웠다. 의류뿐 아니라 가방, 신발, 그릇 등 잡화와 7년 이내 발간 도서,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크기의 가전도 기증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단, 보풀이 생긴 의류는 기증이 어렵다. 니트 한 장이 셀프 심사에서 탈락했다. 기부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1년 동안 재사용할 수 있도록 판매된 의류는 약 220만 벌(2020년 기준)이다. 업사이클링 소재로 재활용된 규모는 2990㎏이다. 이혜라 아름다운가게 홍보팀장은 “환경을 위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이 기부한다. 수익 중 일부를 숲을 조성하는 데 사용하고, 폭염 등 기후위기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폭염 대비 키트’도 지원한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환경교육도 확대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송파가락점 매장 한쪽엔 송파구 지역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숍 ‘세컨드페이지’가 입점해 있다. 한국에서 처음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아름다운가게의 ‘에코파티메아리’ 제품도 만날 수 있다. 사려고 했던 천연 수세미,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등을 구매한 뒤 아름다운가게 서울되살림센터로 향했다.

되살림센터는 아름다운가게에 기증된 물품을 ‘수거-입고-생산-출고-판매-배분’ 과정을 거쳐 재생산한 뒤 서울의 28개 매장으로 보내는 일종의 허브다.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 안에 있다. 너른 공간에 들어서면 물품을 분류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언뜻 택배 물류센터를 연상케도 한다. 임미정 되살림센터장은 “코로나19로 기증 물품이 조금 줄어 하루 평균 20t 분량의 물품이 들어온다”며 “의류의 경우 상태, 브랜드, 트렌드, 옷 재질 등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한다”고 말했다.

새활용플라자엔 아름다운가게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도 입점해 있다. 가죽재킷, 청바지, 소파 가죽, 어닝(차양막) 등을 활용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곳이다. 센터의 이현애 그린사업국장을 따라 매장 안쪽으로 들어서니 가죽, 데님 등 원자재가 한가득 쌓여 있다. 청바지는 유행을 타기 때문에 철 지난 디자인은 의류 브랜드에서 대규모로 기증하기도 한다. 에코파티메아리는 최근 아이들에게 업사이클링을 쉽게 알릴 수 있도록 소파 가죽을 활용해 필통을 만드는 교육용 DIY 키트 등을 함께 판매한다.

“업사이클링을 2006년에 시작해 2008년부터 정식 사업이 됐죠. 한국에선 에코파티메아리가 처음이에요. 최근엔 관심이 커지면서 업사이클링 회사가 70∼100개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지만 사실 제품 판매만으로 흑자를 내긴 쉽지 않아요. 어떤 소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제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낮출 수 없죠. 최근엔 업사이클링 소재를 일부만 쓰고 다른 재료를 섞어 쓰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는 ‘업사이클링 무브먼트(운동)’를 한다는 생각으로 오롯이 업사이클링 소재를 쓰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날마다 산업 쓰레기통 뒤지는 게 일이에요.(웃음) 과정이 썩 멋지진 않죠. 더디고, 어렵고요.”(이현애 그린사업국장)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되는 일은 귀찮고 수고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원을 재순환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품 가격표는 환경을 착취하는 대가를 그럴싸하게 가려주는 속임수였다. 우리에겐 돈을 내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달력에 ‘옷 사지 않기’를 적어두고 성공 여부에 따라 ○× 표시를 하기로 했다. 부득이하게 옷을 사야 할 때는 오래 입을 수 있게 질이 좋고 유행 타지 않는 디자인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다음엔 가방·밀폐용기 기증할 테야

소각과 매립 대신 ‘재활용의 힘’도 적극 이용해볼 요량이다. 아름다운가게는 2020년 한 해 동안 물품 재사용으로 총 1억2993만6026㎏의 탄소배출을 저감했고, 이는 4677만6969그루의 소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특히 의류 재활용으로 줄인 탄소배출량이 6753만8126㎏으로 가장 많았다. 의류 1㎏당 약 12㎏의 탄소가 발생한다는 연구를 토대로 환산한 양이다.

다음엔 의류가 아닌 잡화도 기증할 계획이다. 잘 쓰지 않는 가방, 행사 때마다 받은 에코백, 사은품으로 받았지만 쓰지 않은 밀폐용기 등을 한곳에 모아뒀다. 환경을 위한 진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려 한다.

글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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