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제로웨이스트] 폐현수막으로 만든 세상 하나뿐인 지갑

175플래닛-큐클리프 협업
매년 9천t 발생하는 폐현수막은
썩지도 않아
등록 2021-08-08 06:57 수정 2021-08-10 01:58
(위부터) 폐현수막 등을 이용해 직접 만든 지갑과 가방, 휴대전화 케이스를 들고 있는 큐클리프의 류영선 MD(왼쪽)와 우연정 대표. 김진수 선임기자

(위부터) 폐현수막 등을 이용해 직접 만든 지갑과 가방, 휴대전화 케이스를 들고 있는 큐클리프의 류영선 MD(왼쪽)와 우연정 대표. 김진수 선임기자

매 선거 기간이 되면 알록달록한 현수막 여러 장이 거리의 여백을 메운다. 투표일이 다가오면 흘깃 현수막을 보지만, 선거가 끝나면 현수막은 그대로 소각장으로 향한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2018년 지방선거 때 약 13만 개의 폐현수막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무게로 환산하면 9220t이다. 이 중 재활용된 현수막은 33%(3093t)뿐이다. 선거철이 아니라도 폐현수막은 매년 9천t 정도 발생한다.

현수막은 대개 플라스틱이 포함된 합성섬유로 만들어진다. 썩지도 않을뿐더러 소각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는 물론이고 1급 발암물질과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 폐현수막을 다시 쓸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 속에 탄생한 것이 ‘175코인포켓’ 지갑이다. 업사이클링(Upcycling·새활용)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175플래닛(planet)’과 ‘큐클리프’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175코인포켓’은 1개 남고 완판

2021년 7월19일 서울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의 큐클리프 사무실에서 175코인포켓을 만든 두 회사를 함께 만났다. 175플래닛이 직접 각 정당에 연락해 수거한 폐현수막으로 총 300개를 한정 생산한 이 지갑은 이날 1개 남고 완판됐다고 한다. 큐클리프는 2016년부터 업사이클링에 발을 들여놨다. 시작은 우산이다. 우연정 큐클리프 대표는 “의미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 고민하던 차에 아끼던 우산이 고장났고, 그대로 버리려다가 우산 원단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우치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우산 원단이니 튼튼하고 생활방수도 됐다. 하나둘 만들어 플리마켓(벼룩시장)에 내놓았다.

“‘업사이클링’이란 개념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다만 폐자원의 성질을 잘 알고 이를 제품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 막연한 자신감에 계속한 거죠. 이런 제품을 찾는 분들이 있었고, ‘브랜딩’이나 상품의 질에 대해 조언해주신 분들 덕에 여기까지 왔어요.”(우연정 대표)

큐클리프가 활용하는 폐자원은 다양하다. △기증받거나 수거된 폐우산 원단 △광고 간판으로 사용된 뒤 버려지는 파나플렉스(간판에 씌우는 천) △전시·공연·광고 등에 쓰인 홍보용 현수막 △군용 예비 낙하산으로 사용된 뒤 폐기된 낙하산 원단 △영화제 설치물로 사용된 뒤 버려진 폴리염화비닐(PVC) △건물 외벽 옥외광고물로 사용된 메시 포스터 △캠핑장에서 폐기된 텐트 △폐차에서 사용되지 않고 버려진 에어백 등이다. 큐클리프는 이런 소재를 이용해 지갑, 파우치, 휴대전화 케이스 등 소품과 가방을 만든다. 필요한 경우 친환경 소재인 TPU(열가소성 폴리우레탄)나 타이벡(합성 고밀도 폴리에틸렌 섬유), 오가닉 코튼 등을 함께 쓴다.

“가방이나 지갑 만들 때 내부 보강재로 보통 합성소재가 들어가요. 저희는 그런 소재의 사용을 줄이려고 우산 원단이나 현수막의 흰 부분을 쓰죠.”(류영선 큐클리프 MD)

2021년 4월 SBS디지털뉴스랩이 론칭한 브랜드 175플래닛은 쓰레기와 플라스틱 없는 삶을 위한 물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편집숍을 표방한다. ‘175플래닛’이란 이름은 현재 인류가 지구의 생태 재생 능력보다 1.75배 더 많은 생태자원을 소비하고 있다(2019년 기준)는 국제환경단체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GFN)의 발표에서 따왔다. 제로웨이스트에 도전하려는 이들을 위해 천연 수세미, 대나무 칫솔, 고체 설거지 비누, 삼베 비누망,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치약짜개 등을 담은 ‘루티너 키트’를 처음 내놓은 뒤 큐클리프와 협업해 175코인포켓을 제작했다.

버리는 아크릴로 만든 ‘자투리 키링’과 ‘코인포켓’을 소개하는 175플래닛의 임지연·김혜지 기획자, 김태화 디자이너(왼쪽부터). 김진수 선임기자

버리는 아크릴로 만든 ‘자투리 키링’과 ‘코인포켓’을 소개하는 175플래닛의 임지연·김혜지 기획자, 김태화 디자이너(왼쪽부터). 김진수 선임기자

폐우산·텐트·낙하산 등으로도 소품 만들어

이들은 입을 모아 “환경과 업사이클링에 대해 눈에 띄게 관심이 높아졌다”면서도 소비자가 아닌 기업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국은 여전히 일본 등에 견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어려운 나라다. 류영선 MD는 “일본만 해도 투명한 페트병을 재활용할 수 있지만, 한국은 투명하고 깨끗한 페트병 자체가 적고 재활용 과정에서 오염되는 경우도 많아 아직 리사이클링 원단을 만들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 했다.

큐클리프의 다음 목표는 두 가지다. ‘업사이클링 제품이 언젠가 다시 버려졌을 때 이를 폐기하지 않고 또 새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제품 소재를 100% 가깝게 업사이클링한 자재로 만드는 것’이다. 우 대표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부자재는 일반 소재를 사다가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퍼나 어깨끈도 재활용한 소재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업사이클링에 갓 뛰어든 175플래닛은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일”을 목표로 세웠다. “택배를 보낼 때 지금도 생분해 비닐이나 종이테이프를 쓰고, 종이완충재와 마끈으로 포장하는 등 재활용에 신경 쓰지만 이것도 줄이고 싶거든요. 또 제품만 파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 없는 삶을 널리 알리는 미디어로서 역할도 하고 싶어요.”(김혜지 기획자)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