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 분홍, 초록…. 버려진 병뚜껑, 배달용기, 일회용 숟가락 등을 잘게 파쇄한 플라스틱 조각들이 금형(금속으로 만든 틀)을 통과하면 몇 분 만에 새롭게 태어난다. 마스크를 거는 고리, 손가락에 끼고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초인종을 누를 수 있는 ‘터치프리키’(Touch free key) 등 코로나19 시대에 요긴한 제품들이다. 이렇게 버려진 자원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가치를 높인 물건을 ‘새활용’(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이라고 한다.
2021년 7월13일 찾은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사회적기업 ‘터치포굿’ 지하 작업실은 새활용 제품의 산실이다. 한쪽에서는 소소하지만 쓸모 있는 플라스틱 제품이, 다른 한쪽에서는 폐현수막을 활용한 에코백, 페트(PET)병에서 뽑아낸 재생 원단으로 필통, 가방 등이 만들어진다. 하나같이 버려져 쓰레기가 될 뻔한 자원이 원재료로 쓰인다. 5월부터는 플라스틱 금형을 공유해 소규모 창작자들의 제작을 돕는 ‘리플라(RePla)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생산된 제품 일부는 ‘리플라’라는 국내 첫 업사이클링 공동 브랜드를 붙여 팔린다.
“처음 터치포굿을 시작할 때 ‘삽질포굿’이라는 별명이 있었어요.(웃음) (업사이클링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서 온갖 삽질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거죠. 플라스틱 작업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거든요. 창작자들이 더는 삽질하지 않도록 우리가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가 리플라 프로젝트를 출범했어요.”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는 대학생이던 2008년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낸 것을 계기로 업사이클링 사회적기업인 터치포굿을 창업했다.
2008년만 해도 새활용(업사이클링)이라는 단어는 낯설기만 했다. “서울 홍대 근처 옷집 앞에 좌판을 늘어놓고 직접 손으로 만든 가방, 지갑 등을 팔았어요. ‘폐현수막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손님 대부분이 ‘더럽다’면서 가버렸죠. 업사이클링이 뭔지 아는 손님은 외국인 정도였어요.” 13년이 지난 지금 새활용 제품은 어느새 ‘유행’이 됐다. 당시 40여 개에 그쳤던 관련 브랜드는 300개 가까이로 늘어났다. 그동안 터치포굿도 300개 넘는 제품을 세상에 내놨다. 화장품 공병 플라스틱을 활용한 줄넘기, 오래된 립스틱으로 만든 크레용 등이 대표적이다.
터치포굿 누리집에서 일반 소비자에게 제품을 팔기도 하지만 기업들과 ‘리싱크’(Re-Sync) 프로젝트도 한다. 기업들이 산업 특성상 발생하는 폐기물을 직접 재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면세점 선불카드를 재활용해 ‘여행용 이름 꼬리표(네임태그)’를 만들거나, 아이스팩을 모아 반려견을 위한 쿨매트를 만들어 동물보호소에 기부하는 등의 컨설팅을 했다.
“‘우리한테 이런 쓰레기가 있는데 관심 없냐’ ‘이런 쓰레기도 좀 처리해달라’는 전화가 자주 왔어요. 처음엔 좀 기분이 나빴죠. 우리를 쓰레기장이라 생각하나 싶어서. 그런데 생각을 전환했죠. 업사이클링 기업에는 소재가 경쟁력인데 알아서 소재를 주는 거니까요. 그때부터 업사이클링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지금 700개 정도 돼요. 2015년부터는 연구소를 만들어 새로운 소재를 분석하고 어떻게 제품화할지 기술을 연구하고 있어요.”
최근 기업들이 너도나도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면서 터치포굿을 찾는 기업도 많아졌다. 박 대표는 “백프로 진정성 있게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기업은 절반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E(환경)가 제일 쉽다고 생각하니까 오는 분이 많아요. 장기적으로는 생산공정을 바꾸는 게 좋다고 이야기해드리죠.” 박 대표는 최근 제로웨이스트 활동이나 업사이클링 제품 소비를 일종의 유행처럼 여기는 분위기도 “아직은 거품 같다”고 했다. “가짜 업사이클링도 진짜 많아요. 버려진 소재가 아니라 새 원단으로 만든 가방을 업사이클링 제품이라고 하는 식으로요.” 업사이클링 기업 1세대의 눈은 날카롭다.
회사 안에서도 쓰레기를 줄이려고 실천한다. 옥상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고 조리 과정에서 남은 채소는 지렁이 먹이 또는 퇴비로 쓴다. 손수건 쓰기, 컴퓨터 모니터 끄기 등 한 달에 하나씩 실천과제를 정해놓고 1등을 한 직원에게 상품을 준다. 박미현 대표가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첫 실천은 ‘집에 있는 펜을 다 쓸 때까지 펜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7년이나 걸렸단다. 플라스틱 볼펜이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80년이 걸린다.
최근 터치포굿은 멸종위기 동물과 지구를 지키는 활동까지 영역을 넓혔다. 페트병에서 나온 극세사 원단으로 제작한 코알라 담요 판매 수익금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산불로 위기에 처한 코알라를 돕는 식이다. 한국화 작가들과 협업해 제비, 상괭이 등 멸종위기종을 그린 스카프도 제작했다. 스카프는 버려진 페트병을 활용해 만든다. 최근엔 한강에 돌아온 수달이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스카프를 판매하는 펀딩도 시작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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