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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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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드를 마치며] 쓰레기 난세에서 자원순환경제로

쓰레기 난세에서 자원순환경제로,
거대한 전환을 향한 기업·정부·소비자의 역할
등록 2021-08-13 00:42 수정 2021-08-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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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쌓인 폐기물은 언제나 고장 난 문명의 첫 번째 신호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소설 <흰 개>의 한 구절이다. 전대미문의 쓰레기 위기를 겪는 우리나라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전국 곳곳에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고, 바다는 플라스틱으로 병들고 있다. 쓰레기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쓰레기 난세다.

고장 난 문명의 신호

한국은 2019년 기준 연간 1억8천만t의 쓰레기가 발생하는데, 10년 전과 비교하면 약 40% 증가했다. 쓰레기 발생량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생활쓰레기는 2019년 기준 1인당 연간 약 398㎏을 배출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1인당 연간 400㎏이 넘어가고, 독일은 600㎏, 미국은 750㎏ 정도 되는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위면적당 쓰레기 발생량이 우리나라가 미국의 7배라는 것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좁은 땅에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했기 때문에 쓰레기 처리는 항상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국내 전체 쓰레기 재활용률은 2019년 기준 86.6%이고, 생활폐기물 재활용률은 59.7%이다. 경이로울 정도로 높은 수치지만 거품을 걷어내면 실질 재활용률은 50%가 채 되지 않는다. 전세계 생활쓰레기 평균 재활용률 20%와 비교하면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렇지만 만성적인 쓰레기 처리시설 부족을 생각하면 절대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없다. 2019년 기준으로 생활쓰레기 매립지의 남은 수명은 36년, 민간 처리업체 매립지의 남은 수명은 6년에 그친다. 수도권 지역의 생활쓰레기를 대부분 매립하는 수도권 매립지는 현재 사용하는 3-1매립지를 최대한 쓴다고 하더라도 겨우 7년 정도밖에 수명이 남지 않았다. 대체 매립지를 구하지 못하거나 수도권 매립지 내 남은 부지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수도권 지역 쓰레기 대란은 시간문제다.

우리나라는 1인당 쓰레기 발생량과 재활용률 지표로만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양호한 것 같지만, 단위면적당 쓰레기 발생량과 쓰레기 처리시설 여유 용량 지표로 본다면 쓰레기 문제는 달걀을 겹겹이 쌓아놓은 상황과 같다. 1인 가구 증가, 비대면 소비에 따른 일회용품 소비 증가 등으로 앞으로 쓰레기 발생량은 계속 늘어날 것이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쓰레기 대란의 시계 초침은 계속 빨라질 것이다. 쓰레기 위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쓰레기 사지 않을 권리

근본적인 해결책은 순환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해야만 유지되는 경제시스템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은 물질 생산과 소비의 양을 늘리지 않는다면 불황에 따라 실업자가 넘쳐나고 사회 약자의 고통을 키운다. 자원 고갈과 쓰레기 문제가 닥쳐오는 것을 알면서도 생산과 소비의 페달을 계속 밟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낭비적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순환경제로 가려면 개인의 실천을 넘어선 거대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규제 강화도 필요하지만 민간의 자율적인 역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정부 규제 이전에 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제품 디자인을 개선해야 한다. 재사용·재활용이 되지 않거나 재생원료를 쓰지 않은 제품은 앞으로 시장에서 팔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산업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수리·수선을 통해 제품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쓰레기를 사지 않을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들 스스로 포장재 사용량을 줄이고, 재질을 대체하고, 리필이 가능한 제품을 출시하고, 재사용·재활용을 쉽게 하도록 만들고, 재생원료 사용량을 늘려야 한다. 2030년까지 각 산업 분야 전반에 걸쳐 기업들 스스로 목표와 실천계획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풍성하게 해야 한다. 그런 논의를 할 수 있는 순환경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단기적인 실적 쌓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장기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기업들이 이에 맞춰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을 감시하고 압박하는 행동을 실천하는 소비자의 제로웨이스트 연대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쓰레기 발생에 대한 죄책감에 눌려 우울증에 빠져서는 안 된다. 연대와 실천으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과대포장 제품,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불매운동을 펼쳐야 한다.

단순한 재활용은 의미 없다

소비자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인프라(기반시설)도 대폭 구축해야 한다. 무포장 제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이 동네 단위로 들어서야 하고, 다회용기로 배달음식을 이용하거나 음료를 포장해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회용기에 보증금을 붙여서 판매하는 시스템을 대폭 확대하고, 다회용기를 전문적으로 대여하고 세척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많아져야 한다. 쓰레기를 줄일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쓰레기를 줄이도록 강요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쓰레기는 올바른 분리배출로 자원이 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많이 배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확하게 배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비자가 분리배출해야 하는 품목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온라인 정보 시스템, 신뢰할 수 있는 분리배출 표시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소비자는 △비우고 △헹구고 △이물질은 제거해 분리하고 △쓰레기와 섞지 않는 ‘비헹분섞’의 원칙을 숙지한 뒤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

분리배출한 재활용품은 고품질 재생원료로 재활용돼야 한다. 페트병이 다시 페트병으로 순환될 수 있는 수준의 재생원료를 만들어야 한다. 순환경제 시대에는 단순히 재활용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고품질 재생원료 생산, 즉 업사이클링이 중요하다. 업사이클링을 위해서는 현재의 영세한 재활용 산업구조에서 탈피해 설비의 규모화와 기술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순환경제로의 구조 전환을 통해 쓰레기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재사용·재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되, 당면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발생한 쓰레기는 처리돼야 한다. 투기하거나 방치하는 것보다는 소각이나 매립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다.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없다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쓰레기 처리시설 설치에 따른 지역주민 갈등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쓰레기 발생지 처리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쓰레기는 쓰레기가 배출된 지역에서 최대한 처리돼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쓰레기를 일방적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종량제봉투 전처리 시설을 설치하거나 소각시설 등 쓰레기를 최대한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스스로 설치해야 한다. 최대한 노력했는데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쓰레기를 다른 지역의 처리시설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것은 공공 처리시설뿐만 아니라 민간 처리시설도 마찬가지다.

이미 나온 쓰레기는 소각이라도

둘째, 쓰레기 처리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과도한 공포 혹은 불신도 해소할 필요가 있다. 특히 쓰레기를 태우는 것에 과도한 공포가 조성돼 있다. 쓰레기를 태우는 경우 미세먼지를 비롯한 오염물질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주변 지역 환경과 주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줄 정도로 펑펑 배출되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선 아파트 단지 내 대규모 소각시설이 설치돼 수십 년째 운영됐지만, 생활폐기물 소각시설로 인한 건강 이상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현대적 오염방지 시설과 자동굴뚝측정장치(TMS) 등 감시체계가 잘 갖춰졌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엉터리로 운영되지 않는다. 심리적 공포를 자극하는 과장된 자료에 휘둘리지 말고 좀더 객관적으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주민 지원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는 공공에서 설치하는 소각시설과 매립시설에 한정해 주변 영향지역(소각시설은 반경 300m 이내, 매립시설은 2㎞ 이내) 거주 주민에게만 지원한다. 민간 처리시설 주변 지역주민이나 지역사회는 제도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공공 처리시설의 경우에도 주변 영향지역 안과 밖의 갈등이 있다. 민간 소각시설이나 매립시설의 경우 쓰레기 배출자가 내는 처분부담금도 모두 국가가 징수하고 주변 지역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에는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주민 지원 범위는 민감한 문제이며, 잘못 건드릴 경우 오히려 갈등이 더욱 폭발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지원 방식은 25년 전 낡은 방식이다. 변화한 환경에서 주민 갈등을 예방하거나 관리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로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을 지역사회와 합리적으로 공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실에 눌리지 말 것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더 많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정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더 많은 책임을 느끼고 더 많은 행동을 해야 한다. 돈키호테는 ‘현실은 진실의 적’이라고 했다. 당면한 현실에 눌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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