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부터 쓰레기를 묻어온 서울 마포구 난지도 매립장은 수도권 쓰레기 9200만t을 매립하고 100여m에 이르는 산 두 개를 만들었다. 난지도는 그냥 쓰레기를 방치하는 비위생 매립지였다. 난지도뿐이랴. 1993년 난지도 매립장이 수도권 매립지로 옮기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쓰레기는 비위생 매립지에서 처리했다. 그런 땅에 흙을 덮어 농사짓기도 했다. 매립 기록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개발하기 위해 땅을 파보니 쓰레기가 나왔다며 분쟁하는 일은 최근까지도 빈번하다.
이런 수준이었으니 쓰레기양이 어마어마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1992년 국민 1인당 일일 쓰레기 발생량은 1.8kg으로, 7.5%만이 재활용됐다. 이 수치는 당시 일본 1.0kg, 독일 0.9kg에 비해 매우 많은 발생량이었다. 경제는 급속히 성장했고 대규모 도시개발과 소비로 이어지면서 포장재, 건설폐기물 등 잘 썩지 않는 가연성 쓰레기가 증가했다.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됐고 매립지는 포화했다. 정부는 소각 정책을 도입한다. 소각시설 설치 주변 지역 주민은 매립이나 소각 모두 환경오염 시설로 인식했고 소각·매립 반대운동으로 이어졌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환경단체들은 매립·소각을 백지화하고, 쓰레기를 최소화하며, 재활용 분리배출로 재활용산업을 육성하라고 요구했다.
1992년 환경단체들은 오염 원인자 부담 원칙, 사전예방 원칙, 자원재활용 원칙 세 가지를 정해 ‘쓰레기종량제’ 도입을 촉구했다. 1994년 33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사업을 했고 1995년 쓰레기종량제 도입으로 이어진다. 쓰레기종량제는 이후 분리배출과 재활용산업의 시작점이 된다. 쓰레기 발생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묻느냐 태우느냐만 따지던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줄이고 분리배출하고 재활용하는 것으로 바뀐 계기가 됐다. 1994년 생활폐기물 하루 매립량 4만7천t(80%)이 2019년 7500t(13%)으로 줄어들고, 재활용률이 62%에 이르게 된 성과는 쓰레기종량제에서 시작됐다.
쓰레기종량제가 시작됐지만, 종량제봉투에 지금처럼 마른 쓰레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음식물쓰레기가 함께 들어 있었다. 하루 약 1만5천t의 음식물쓰레기를 매립지에서 처리했다. 음식물쓰레기는 당연히 부패했고, 악취와 해충으로 전국 매립지 지역 주민이 고통받았다. 주민들은 1996년부터 환경단체와 함께 음식물쓰레기 반입 금지 요구가 이뤄질 때까지 매립지에 청소차량이 진입하는 것을 막아섰다. 같은 해 매립지에 음식물쓰레기 반입이 멎었고 정부는 반입 금지를 늦춰달라고 요구하며 방법을 찾았다.
결과적으로 음식물쓰레기 분리배출 자원화, 직매립 금지제도가 도입됐다. 이런 제도로 음식물쓰레기 90% 이상이 분리배출되고 하루 1만5천여t의 음식물쓰레기가 퇴비나 사료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해결책에 그쳤다. 음식물쓰레기 발생은 줄지 않았고 그렇게 생산한 퇴비, 사료 자원은 남거나 동물 사료 사용 금지로 갈 곳이 없어졌다. 쓰레기종량제와 마찬가지로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처리비용을 책정하자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했다. 지금은 익숙해진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다. 2013년 6월부터 시행됐다.
비닐봉투는 거저 주는 물건이었다. 쉽게 받아와서 쉽게 버렸다. 광주 지역 환경단체는 일회용 비닐봉투를 50원에 판매하고 비닐봉투를 되가져오면 환불해주는 협약을 슈퍼마켓들과 맺었다. 슈퍼마켓들은 되가져온 비닐봉투를 평균 세 번까지 재사용했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비닐봉투 구매비가 절감됐다. 절감된 비용과 찾아가지 않은 보증금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고 학교에 지원했다. 실험은 성공했다. 운동의 역사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다. 그동안 주민 소각·매립 반대운동에서 시작해, 일회용품과 포장폐기물 감량운동을 벌여오던 각 지역의 환경단체들이 한데 모이기로 했다. 제도를 바꿔내기 위해 전국 운동이 필요했다. 1997년 전국 환경단체가 모여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쓰시협)를 만들었다. 쓰시협은 이후 자원순환사회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이어간다.
광주 지역 비닐봉투 보증금제 성과를 바탕으로 일회용 비닐봉투 보증금 제도를 정부에 제안했다. 결실을 보았다. 1999년 일회용 비닐봉투, 쇼핑백을 유상으로 판매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2002년 자원순환사회연대는 404개 유통 매장과 장바구니 이용 고객 할인, 자율포장대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자율실천선언을 체결한다. 일회용 비닐봉투 구매율이 20.7% 감소했다. 이후 대형마트와 165㎡(50평 이상) 이상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 사용이 금지됐다.
물론 모든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이 단체의 주장 → 업계 자율협약 → 법 개정으로 순조롭게 이뤄진 건 아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패스트푸드업계와의 협약으로 시작해 커피전문점 등으로 대상을 넓혀갔다. 보증금제를 실시한 매장에서 일회용컵 사용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러다 2008년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불현듯 폐지됐다. “앞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고 단체들은 반발했다.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2009년 이후 일회용컵 사용은 매년 20~50% 늘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와 업체에 일회용컵 줄이기를 강하게 요구했고, 마침내 2020년 5월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 금지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담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2년 6월부터 시행된다.
순환경제 사회의 목표는 물론 ‘제로웨이스트’다. 1980년대 미국 환경단체 어반오어(Urban Ore)의 창설자 대니얼 크냅 박사가 썼던 ‘완전한 재활용’이라는 단어가 1990년대 들어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로 이어졌다. 각 나라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외치게 된 배경은 비슷했는데, 소각·매립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고 이 과정에서 결국 자원순환을 통한 쓰레기 제로화가 아니면 답이 없다는 인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2000년 국제소각반대대안연맹(GAIA) 창립, 2002년 제로웨이스트 국제연맹 창설 등 자원순환운동은 국제연대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체계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폐기물 감량과 재사용, 재활용 확대는 또 다른 산업과 고용을 창출한다. 생산 단계부터 재사용과 수리, 재활용이 쉽도록 해야 한다. 공유와 고쳐 쓰는 문화 확대, 물건 오래 쓰기 같은 순환경제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2010년대 들어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지역과 개인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의미를 더하고 있다. 2011년부터 자원순환 마을 만들기, 탈플라스틱 지역 만들기 같은 지역 단위 교육·문화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활동가와 인플루언서들이 일상 속 생활 방식의 변화를 전하며 자원순환을 이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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