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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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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시민의 ‘작은 승리’ 모여 기업도 변했다

화장품 어택, 스팸 뚜껑 반납 운동 등
이끈 4명의 이야기
일회용 안 쓰게 ‘기본값’ 바꾸자!
등록 2021-08-12 01:03 수정 2021-08-12 10:40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21년 4월7일 제과업체에 불필요한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하라고 요구하며 행위극을 펼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21년 4월7일 제과업체에 불필요한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하라고 요구하며 행위극을 펼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쓰레기 세상을 바꾼 몇 차례의 ‘작은 승리’가 있었다.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 ‘과도한 포장을 줄이자’고 요구하는 시민들의 직접행동, 이른바 ‘어택(Attack) 운동’이 2018년부터 벌어졌다. 환경운동단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예쁜 쓰레기’인 화장품 용기, 불필요한 스팸(통조림햄) 뚜껑과 빨대 등을 기업에 반납하는 움직임이 잇따랐다. 그 결과 1+1 등 ‘묶음포장’이 금지되고 명절 선물세트에서 스팸 뚜껑이 없어지고, 빨대를 제거한 멸균우유가 출시됐다. 소비자의 적극적인 행동이 기업의 변화를 끌어냈다.

이런 사회적 물결의 중심에 그들이 서 있었다.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허승은 녹색연합 팀장, 허지현(클라블라우) 쓰담쓰담 대표가 ‘어택 운동’의 성과와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자 2021년 7월16일 오전 9시 모였다. 코로나19 탓에 직접 얼굴을 맞대는 대신 화상회의로 진행했다.

2018년 ‘쓰레기 대란’ 뒤 인식 전환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포장지 없는 알맹이만 판매하는 ‘알맹상점’을 운영하는 고금숙 대표는 스스로를 ‘쓰레기 덕후’라고 소개한다. 2018년 한 대형마트에서 비닐 포장재를 벗기는 ‘플라스틱 어택’, 2019년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주워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 돌려주는 ‘일회용컵 어택’, 2020년 재활용 등급 표시에 예외가 된 화장품 용기 8천여 개를 모아 기업에 반납한 ‘화장품 어택’ 등의 현장에 모두 그가 있었다. 백나윤 활동가는 부서지기 쉬운 과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비닐 안에 플라스틱 상자(트레이)를 넣는 롯데·해태 등 국내 대형 제과업체를 상대로 ‘플라스틱 트레이는 쓰레기’라는 구호를 앞세워 싸우는 중이다. 화장품 어택 운동을 함께했던 허승은 팀장은 최근 배달 플랫폼 3사가 일회용 수저를 기본 제공하지 않도록 하고 공공배달앱이 다회용기를 사용하도록 이끌어냈다. ‘쓰레기에 담겨 있는 쓰임새에 관한 담론을 나눠보려는’ 자발적 시민들의 모임인 ‘쓰담쓰담’ 대표를 맡은 허지현씨는 “버려지는 것을 줄이는” 업사이클링(새활용)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쓰담쓰담은 스팸 뚜껑과 빨대 반납 운동을 주도했다.

2021년 7월16일 화상회의에 참석한 허승은 녹색연합 팀장,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 허지현 쓰담쓰담 대표. 황예랑 기자

2021년 7월16일 화상회의에 참석한 허승은 녹색연합 팀장,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 허지현 쓰담쓰담 대표. 황예랑 기자

최근 엠제트(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합쳐 부르는 말)를 중심으로 플로깅(조깅하면서 쓰레기 줍기),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최소화) 활동이나 업사이클링 제품 등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어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허지현 2018년 (중국의 폐기물 수입 중단으로 촉발된) ‘쓰레기 대란’ 전후가 많이 달라졌어요. 그전에는 쓰레기 ‘덕질’ 하는 사람들끼리 뭘 해봤자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느낌이었다면 이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꾹꾹 눌려 있던 게 봇물처럼 조금씩 터지고 있구나 싶은.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내부에 자원순환이라는 파트가 만들어진 게 2년째예요. 예전엔 소비자에게 단순히 ‘분리배출 잘하자’고 했다면 지금은 기업에 ‘쓰레기 줄여라’ ‘플라스틱 트레이 빼라’ 이렇게 요구하죠. 소비자도 분리배출이 자원순환 사회를 만드는 일부이고 생산단계에서 어떻게 하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 같아요.

허승은 예전에도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 운동이 있었고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운동도 있었고, 머릿속에서 다 알고는 있었잖아요. 그랬던 게 지금은 (업사이클링 제품 구매 등) 대안적인 소비로 이어지면서 기업도 제도도 같이 변화하고 있어요.

고금숙 환경운동단체들이 2000년대 초반 쓰레기종량제 도입 이후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사회적 의제가 되지 않았던 쓰레기 문제가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핫한 사회운동이 됐어요. 개인의 참여가 많아지고 사회적 물결이 된다는 건, 첫째는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둘째는 그 힘으로 제도를 바꿔내는 거예요. 배달음식을 먹으면서 플라스틱 용기가 8개나 나왔다고 화나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에너지를 모아서 배달 플랫폼 업체가 꿈쩍이라도 하게 만드는 거죠.

백나윤 저는 MZ세대인데, 주위 친구들이나 유튜브를 보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 같아요.

고금숙 알맹상점을 먹여살리는 소비자의 80%가 MZ세대 여성이에요. 대안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찾고, 내 삶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며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꾀하는 사람들이죠. 페미니즘, 동성애, 동물권 그리고 비건과 제로웨이스트 운동도 그 맥락이에요. 제로웨이스트 운동만 해도 아주 사소해서 매력적인, 개인의 삶과 밀접한 부분이 많거든요.

SNS 통한 MZ세대 여성들 참여 많아

여러분은 모두 기업을 상대로 어택 운동을 벌였는데요, 어택 운동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백나윤 환경운동연합은 2021년 초 해태, 롯데, 동원, 농심을 대상으로 ‘트레이 제거’ 운동을 했어요. 해태제과 앞에서 홈런볼 트레이를 없애라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식으로요. 업체 4곳 모두 2021년 말이나 2022년까지 트레이를 다 제거하거나 종이 트레이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죠. 조금 공격적일 수도 있지만 기업이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을 드러내 소비자가 알게 한다는 측면에서 어택 운동은 필요한 것 같아요.

허지현 빨대, 스팸 뚜껑 반납 운동을 하면서 주의했던 점 중 하나가 기업을 공격하거나 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기업에 건의하거나 소통하기 위해 손을 내밀자는 취지라는 점이었어요. 일반인이 더 쉽게 참여할 수 있었고, SNS를 통해 더 많이 확산됐죠. 실제 스팸 뚜껑이나 빨대가 없어지면서, 소비자도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게 아니라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기업들이 지금쯤은 변했어야 하는 시기라서 반응한 측면도 있고요.

허승은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으로 음식을 배달시킬 때 ‘일회용 수저는 안 받겠다’고 일부러 체크해야 했어요. 숟가락 필요한 사람이 체크해야 하는데, 받는 게 기본값이었던 거죠. 다회용기 사용은 한순간에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일회용 수저 안 받기’ 선택지부터 바꾸라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배달 3사가 있으니 한 곳만 먼저 바꿀 수 없는 거예요. 3사가 협의해서 2021년 6월1일부터 바뀌었어요. 선택지 변경 하나만으로도 일회용 수저 사용량이 많이 줄었다고 해요. 시민들의 요구와 힘이 모여서 제도 변화로 이어진 거죠.

고금숙 대표는 ‘어택 운동’의 역사를 한 줄에 꿰어 설명했다. 2018년 ‘쓰레기 대란’이 터진 뒤 녹색연합과 일반 시민들이 모여 한 대형마트에서 벌였던 ‘플라스틱 어택’ 운동이 시초였다. 이들은 과도한 플라스틱 포장지를 없애자고 주장하면서 PVC(폴리염화비닐) 포장지 금지와 묶음포장 금지를 요구했다. 2019년에는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상대로 일회용 플라스틱컵 어택 운동을, 2020년에는 친환경 셀프 정수기로 유명한 브리타를 상대로 필터 어택 운동과 화장품 어택 운동을 벌였다. “음식 포장지에 PVC랩이 금지되고, 자원재활용법(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묶음포장이 금지되고, 2022년에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부활해요. 브리타 본사가 아시아 최초로 필터를 수거하기로 했고요.” 고 대표는 이런 “작은 승리” 덕분에 “일반 시민들이 재활용이라도 잘해야겠다는 관심이 많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빨대 빼주세요” 해야 하나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평가지표 때문에 억지로 반응하는 건 아닐까요. 앞에 이야기한 소비자의 큰 변화에 견줘볼 때 기업의 변화 속도는 어떤가요.

허승은 기업들이 이런 흐름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요.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알지만 빠르게 적용하지 않는 거죠. 비용 문제도 있을 테고. 아는데 변화가 더딘 거죠. 그 와중에 작은 승리를 통해 기업이 더 빠르게 변화하도록 이끌어낸 부분이 있어요. 과거와 달리 시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SNS로 확산하는 속도가 예측 불가능하잖아요. 기업 처지에서는 그런 이미지가 매출에 즉각 영향을 미치고요. 어택 운동으로 끝이 아니에요. 환경운동단체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국회의원을 만나서 법안을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내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고금숙 일회용 수저 안 받기 운동에서 ‘기본값’을 바꾸는 과정을 이야기해주셨는데, 어택 운동으로 바꾸고 싶은 세상이 바로 기본값, 즉 디폴트값(초기에 정한 설정값)을 바꾸는 거라고 생각해요. ‘비닐 필요 없어요’ ‘빨대 빼주세요’ 항상 이런 선택지를 붙여야 하는 건, 지는 싸움이에요. 일회용을 쓰는 사람들이 기본값이 안 되게 만드는 세상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운동은 기본값을 바꿔내는 운동이에요.

허지현 거북이 코에 꽂힌 빨대 사진, (10m 넘는 높이의) 경북 의성 ‘쓰레기산’ 같은 이슈가 하나둘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한 단계 한 단계씩 달라진 것 같아요. 그런 소비자의 힘을 바탕으로 기업을 설득한 거고요. 소비자가 제품을 사주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면, 기업은 말려도 변화해요.

앞으로 어떤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허지현 스팸 뚜껑 관련해서 명절 선물세트만이 아니라 모든 제품에서 뚜껑이 분명히 빠질 텐데, 그러려면 소비자의 목소리가 좀더 나아가야 해요. 묶음포장을 뺀 비건(채식) 라면을 기업에 제안했는데, 제품이 곧 나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어요.

백나윤 지금까지는 과자 제품 중심이었는데 풀무원, 오뚜기 등으로 확장해서 밀키트나 간편식품에서도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하라고 요구할 예정이에요. 기업한테 생산 단계부터 플라스틱을 감축해야 한다고, 의지를 보이도록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고금숙 결국 장기적으로는 플라스틱 생산량을 어떻게 줄일 거냐, 이 문제인 것 같아요. 석유에서 뽑아내는 플라스틱 생산량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알맹상점에 이어서 일회용컵 없이 다회용 용기로만 운영하는 카페를 2021년 7월1일 서울역에 열었어요. 제로웨이스트 매장 90곳과 함께 테트라팩(종이·폴리에틸렌·알루미늄 포일로 만든 멸균팩)을 수거하는 제도도 구축하려고 해요.

허승은 배달앱 3사의 시장점유율이 90%가 넘어요. 배달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배달앱 3사가 움직여야 합니다. 업체에 다회용 배달용기 사용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려 합니다. 일회용품 규제를 법에 어떻게 반영할지도 중요해요. 제도로 바꿔낼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모든 기업이 기업 성격과 무관하게 자꾸 플로깅을 홍보해요. 재활용이 문제를 해결하는 답인 양 포장해서 죄책감을 지우고 기존 생산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거죠. 이런 기업들의 태도를 감시하고 재활용만이 답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겁니다.

‘쓰레기 없는 세상’ 상상하기

쓰레기 덕후들의 열띤 토론은 2시간을 꽉 채웠다. 이들의 머릿속은 소소하지만 거대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약에 언제든 재사용 용기를 대여하고 반납할 수 있다면, 만약에 모든 플라스틱 용기에 보증금이 붙고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에 몽땅 세금을 매긴다면… 만약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쓰레기 없이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세계, 충분히 멋지지 않은가.”(고금숙,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이들이 꿈꾼 ‘만약에’ 덕분에 ‘쓰레기 없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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