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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낸 동료, ‘SPL 산재’ 공론화 이끌었다

등록 2022-11-10 16:25 수정 2022-12-09 06:40

하루에 2명꼴로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2021년 한 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828명이다.

‘도대체 업무환경이 어떻기에 일터에서 다치고 죽는가.’ 산재를 접할 때마다 많은 독자가 궁금해하지만, 막상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통상의 산재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사망사고 속보로 알리는 간단한 사고 경위와 사고 장소가 담긴 한두 줄로 끝난다.

에스피엘(SPL) 사고는 조금 달랐다. 회사에 맞설 노동조합이 있었고, 후방에서 지원하는 노동 관련 활동가들이 있었다. 사고 초기 ‘재해자가 덮개를 임의로 열고 일했다’거나 ‘2인1조가 문제없이 이뤄졌다’는 회사 쪽 주장을 강규형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SPL지회장이 실명으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배합 작업을 할 때는 여러 재료를 하나씩 넣고 섞어가며 일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물량을 모두 소화하려면 뚜껑을 열고 일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공정의 다른 동료들도 SPL지회를 통해 익명으로 노동환경을 증언했다. 강 지회장은 사고 직후에 회사 쪽이 다시 공장을 돌리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언론에 알리기도 했다.

시민사회도 노조의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받아안았다. 에스피씨(SPC)그룹이 재해 이전부터 제빵기사 불법파견과 노조 탄압 등으로 논란이 된 터라 이에 대응하는 구심점이 있었다. 함께 연대하는 시민단체로 구성된 ‘파리바게뜨노동자힘내라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수차례 열며 사건을 널리 퍼뜨렸고, 공동행동 소속 권영국 변호사가 직원을 여럿 면담해 구체적인 사고 상황을 써내려갔다. <한겨레21>이 지난호에서 재해의 인과관계와 문제점을 자세하게 짚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이들의 노력 덕분이다.

다른 죽음도 응당 받아야 했을 사회적 관심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회사에 맞서는 노동조합이 없어 동료들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개별 기업을 상대로 시민사회가 구심점을 갖는 경우도 드물다. 2022년 5월에도 SPL 사고와 유사한 경북 청도 고춧가루 제조 공장 끼임사가 있었지만 회사 규모가 워낙 영세한 탓에 최소한의 사건 내용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사람이 매일 죽어가는 현실에 비춰 산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 교훈은 아주 얕은 수준이다. ‘죽음의 배경’이 더 많이 기록돼야 하는 이유다. 사고를 앞장서서 알린 강규형 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딸 대학 보내서 공장 못 오게 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 딸들도 공장 온다. SPL처럼 큰 공장이 철저히 반성하고 안전해져야 다른 공장도 안전해진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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