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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등록 2022-03-20 22:57 수정 2022-03-22 16:34
1405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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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벌이한 지 20년째이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하여 내 글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좋은 글’을 일부러 찾아 읽는다. 명쾌한 논리력에, 깊은 통찰, 문학적 감수성, 거기다가 춤추듯이 미끄러지는 문장까지. 질투는 나의 힘, 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저런 타고난, 탁월한 글쟁이가 될 수 있을까. 두고두고 읽고 싶어질 글 한 편, 아니 문장 하나 평생 써볼 수 있으려나. 자아는 쪼그라들고, 시기심이 부풀어오르지만 질투가 곧 ‘좋은 글쓰기’를 추동하는 힘이 되진 못한다.

그래서 특별히 모셨다. 못 견디게 질투가 나지만 그 글에 압도돼 “질투조차 할 수 없는 대상”(신형철 인터뷰 참조).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글쟁이이자 저술가 21명을 인터뷰해, 왜 글 쓰는 삶을 선택했는지, 좋은 글을 쓰는 비법은 없는지를 들었다. 21명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강명관, 강원국, 김상욱, 김원영, 김진해, 김하나, 김혜리, 김혼비, 박주영, 박찬일, 신형철, 유현준, 은유, 이라영, 이슬아, 정여울, 정은정, 채사장, 최재천, 최현숙, 희정.

작가 21명은 <한겨레21> 기자들과 출판계 관계자의 추천을 거쳐, 대중성과 지향하는 글쓰기 방식, 다루는 분야, 성별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2020년 8월 발간한 ‘<한겨레21>이 사랑한 작가 21명’(제1326·1327호)과 겹치지 않도록, 소설 등 문학 작가는 제외했다. 현재 칼럼을 연재하는 등 <한겨레21>과 관련 있는 작가도 제외했다. 그 뒤 <한겨레21> 기자 12명과 사내외 필자 9명이 사진기자들과 함께 21명을 차례로 만났다. 학창 시절부터 ㄱ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동경했던 A기자는 설레고 걱정돼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편집장인 나 역시 평소 ‘팬심’으로 책에 밑줄 치고 문장을 필사하던 B작가와 C작가가 지면을 빛내준다는 데 설렜음을, 수줍게 고백한다. 우리도 ‘쓰는 사람’이면서 각자 인터뷰한 작가와, 그의 글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두근두근 설렘은 뉴스룸 밖으로도 퍼져나갔다. 아직 발간되지도 않은 이번호 잡지 ‘21 WRITERS 2’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잡지 예약 주문을 받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주간 잡지’ 판매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2022년 3월17일 기준) 무려 차준환, 한소희, 현빈 등 유명 연예인이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잡지들을 제치고 말이다. 최근 부쩍 높아진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이런 호응에 한몫했을 테다. 대형서점들은 한쪽 서가를 아예 글쓰기 책 코너로 꾸미고, 기업·지방자치단체·도서관 등에선 글쓰기 강의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작가 21명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많이 웃었다. 무엇보다 나만 글쓰기가 막막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았다. “아무것도 안 떠오를 땐 애국가 가사라도 좋으니 무엇이든 쓰기 시작”(김원영)하고, “떠오르지 않을 때 사전이 도움이 되지는 않고 저는 그냥 사전을 좋아할 뿐”이어서 “질병 사전, 자동차 사전, 그림 사전 등이 있다”(김혜리)니. “글을 쓰며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나’ 생각”(김진해)하는 게 나뿐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또한 많이 배우고 겸손해졌다. “고치면 고칠수록 글이 좋아진다는 걸 알기에 100번이라도 고치고”(최재천) 연재 노동을 위해 “운동을 매일 1시간씩 하고 30분가량의 낮잠을 챙기며, 숙련된 국숫집 사장님처럼 쓴다”(이슬아)는 성실함 앞에서.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생각 지도인 마인드맵을 보며 방향을 바로잡는”(김하나), 필사노트를 쌓아두고 “문장을 외우고 발효시키며 오래 생각하는”(은유) 노력에 놀라면서. 무엇보다 “아직도 이 시대에 진지하게 백지 앞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존재”(김혼비)를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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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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