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공개했다. 다만 제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와 공론화위원회가 합의한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안과 내용이 배치돼 국회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9월4일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올해 수준인 42%로 유지하는 내용의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심의·확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방안에 최근 도입 의사를 밝힌 ‘기금 자동조정장치’와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도 그대로 담았다.
현행 국민연금은 소비자물가 변동률에 따라서만 급여가 조정되는데,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시점, 기금 감소 5년 전, 기금이 감소하는 시점 등 재정 위험도에 따라 연금 지급액이 자동으로 바뀐다. 정부는 기금 안정성을 위해 법 개정 없이 자동으로 연금 지급액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연금 전문가들과 시민사회가 ‘ 위장된 연금 깎기’라고 거세게 비판하자 “도입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는 현행 보험료율 9%를 13%로 올리는 과정에서 세대별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2025년에 50대인 국민연금 가입자는 매년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씩 인상해 2040년이 되면 모두가 보험료율 13%가 되게 한다는 구상이다. 이 방안은 개인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하는 ‘사회보험의 기본원칙’에 어긋나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정부는 강행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런 제도가 사실 다른 나라에 없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유례없는 고령화를 겪고 있어 연금개혁이 주는 부담을 세대 간에 조금씩 나눠보자는 취지”라며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 사무국장은 “4050 세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대체율을 보장받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들이 사적으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부모를 부양하는 부담까지 고려하면 특권을 누렸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정규직과 자영업자가 많은 50대의 특성을 무시한 근시안적 대책으로, 잠재된 세대 갈등을 심화시킬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는 현재 59살인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 상한을 64살로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고, 기대여명이 증가하는 현실을 고려한 조처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수급 연령(65살)은 추가로 연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노동계에선 연금 가입 기간이 늘면, 법정 정년도 함께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금개혁안을 논의하는 과정도 문제가 됐다. 연금개혁을 심의한 국민연금심의위원회(심의위)는 사용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 수급자 대표 등 24명의 심의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9월4일 열린 심의위에 노동자 대표로 참석한 홍석환 위원(민주노총 정책국장)과 류제강 위원(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연금개혁 추진계획’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정부는 계획안에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2%를 상정했는데, 국민은 지난 공론화에서 소득대체율 50%를 전제로 보험료율(9%에서) 13% 인상에 합의한 것이다. 자동조정장치는 연금액 인상에 물가상승을 반영하지 않아 결국 더 적게 주기 때문에 연금 하락의 문제가 있다”고 정부안에 반대했다.
근로자 대표 네 명 가운데 나머지 두 명은 침묵을 지키고 정부 계획안에 찬성해 ‘거수기’ 역할에 그쳤는데 그들 중 한 명은 8월 심의위원에 임명된 ‘국민노동조합’(국민노조)의 법률지원단장 변아무개 변호사다. 윤석열 정부 들어 복지부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각각 두 명씩 위원을 추천했던 노동자 대표 몫을 줄이는 대신, 한 자리는 뉴라이트 단체인 국민노조에, 다른 한 자리는 전국노총(국민노총 후신)에 추천권을 줬는데, 정부 개혁안에 반대할 가능성이 큰 근로자 단체의 힘을 빼기 위해 미리 손쓴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반노동 활동을 하는 뉴라이트 성향의 국민노조가 연금개혁안을 심의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앞서 2021년 씨제이(CJ)대한통운 노동쟁의 때 대리점주들이 전국택배노동조합의 쟁의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조합비를 대신 내주고 국민노조 지회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나 중앙노동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된 적이 있다.
2018년에 설립된 국민노조 누리집을 보면, 하급단체로 택배산업본부와 국민건설산업노동조합, 공공통합노동조합연맹, 그리고 제대군인노동조합 등 네 단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노조는 노동조합 회계 공시도 하지 않고 있다. 조합원 1천 명 이상의 노동조합은 회계 공시를 해야 한다. 노동조합법이 규정하는 노동조합 규약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선 안 된다고 노동법은 규정한다. 회계 공시도 하지 않는 국민노조가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맞춰 ‘노조재정 투명화를 위한 노동개혁 토론회’를 열었던 일은 역설적이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현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조합법에 나와 있는 노조 회계장부를 내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원 벌칙이 있는데, 강력하게 법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는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수시로 “국회 논의를 지원하겠다”거나 “국회의 활발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히면서 공을 국회로 넘겼다. 정부가 계획안을 만들었으니 이제 국회가 정부안을 토대로 논의해 합의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제21대 국회 연금특위와 공론화위원회, 시민대표단 500명이 합의한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안을 완전히 뒤집는 ‘연금개혁 추진계획’이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수용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미 지난 국회에서 여야가 소득대체율 44%에 어느 정도 합의한 상황에서 정부가 소득대체율을 42%로 터무니없이 낮춰 제시했는데 국회가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나마 정치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지급보장 명문화나 군 복무와 출산 크레딧 지원 강화 등의 연금개혁도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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