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童顏)이세요”라는 말은 칭찬으로 들린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의 표정도 밝아진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젊음은 핸디캡에 가까웠다. 사회생활에는 경험과 완숙함이 필요하지 않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 먹어 보이려 애썼다. 수염을 기르거나 어른스러운 말투를 썼으며, 조신하게 정장을 갖춰 입기도 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젊음은 이제 우리 시대의 주류다. 아이처럼 살려는 어른, ‘키덜트’가 좀 많던가. 이런 중년은 나잇값 못하는 ‘옛날 사람’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젊어지려는 노력은 화장을 지나 변장의 수준까지 나아갈 터다.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다가갈 리 없다. 그렇다면 젊음이 표준이 된 시대, 중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1948~)에 따르면, 젊은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문화는 중년들이 만든 ‘업보’다. 이들이 앳되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라. 프랑스를 청춘 사회로 이끌었던 68혁명 세대는 인구가 많았다. 우리나라도 1971년생 무렵의 출생자가 가장 많다. 그들이 지금의 오십 대다. 젊을 때 그들은 나이 든 이들을 밀려날 과거의 사람이라 여겼다. 그러곤 자신들의 젊음을 문화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브뤼크네르에 따르면, 지금의 중년은 ‘한창 시절, 젊음을 재창조했던 세대’다. 그 이후로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났다. 이제 오십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년은 늘어난 인생 진도표에 맞게 ‘노년을 재창조할 운명의 사람들’ 아닐까? 인구 구조로 볼 때도 오십 대가 가장 숫자가 많으니, 사회의 주류가 되기에도 충분하다.
나아가 오십은 ‘철학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젊을 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다. 중년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나는 내 몸의 주인이 아니다. 결림과 통증을 보듬지 않고 밀어붙일 때, 몸 상태는 확실하게 내 일상에 보복을 안기지 않던가. 그래서 중년은 꾸준하게 되묻게 된다. “이제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바라도 될까, 나는 이제 무엇을 (더) 알 수 있을까?” 이는 일찍이 칸트가 품었던 철학 물음이다. 브뤼크네르가 우리는 단지 늙어가는 것만으로도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제대로 오십 이후의 삶을 꾸리고 싶다면,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어릴 때 우리에게 오십 줄의 사람은 그냥 ‘어른’으로만 보였다. 그들은 ‘우리’처럼 욕망에 휩쓸리거나 불안에 파묻히지 않을 듯싶었다. 하지만 오십 무렵에 다다른 이들은 이런 생각이 선입견이었음을 절절히 깨닫는다.
“50, 60, 70세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 30세, 40세 때와 똑같다. (중략) 어느 나이에나 삶은 열의와 피로의 싸움이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이세진 옮김,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인플루엔셜, 2021, 96쪽
인생은 모든 순간이 도입부다. 우리가 눈을 뜨고 맞이하는 하루는 언제나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첫날 아니던가. 하루의 흐름은 인생 전체와 닮았다. 눈부신 새벽에서 의기양양한 정오로, 다시 수고로운 오후와 차분한 황혼으로 시간은 거듭된다. 떠올랐다 가라앉는 삶의 모든 단계가 매일 반복되는 셈이다. 이 점은 중년에 이르러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1년에 365번이나 새롭게 인생을 출발하지 않는가. 힘든 날도 결국 지나간다. 중년이 지나간 세월을 보며 회한에 젖거나 왕년을 그리워하며 보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100살 노인도 계획을 세우고 내일을 꿈꾸는 한, 그이의 삶도 스무 살들과 차이가 없다. 욕망을 품고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오십은 삶이 많이 굳어진 나이다. 우리 안에는 너무 익숙해졌기에 바꾸고 싶지 않은 삶의 방식들이 자리 잡았다. 강한 정신을 지닌 이들도 중년에 이르러 우울함에 빠져드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모든 나날은 여전히 새롭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는 않다. 젊었을 때와 같은 삶의 루틴을 고집하다간 마음도 몸도 부서지기 쉬울 테다. 그렇기에 중년의 시기에는 달라져야 한다. 오십은 젊은 날의 자기를 넘어서는 시기여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브뤼크네르는 ‘바깥의 원칙’을 들려준다. 신의 부름(종교), 육체의 부름(에로티시즘), 다른 대륙의 부름(여행)은 여전히 중년의 가슴을 살랑거리게 한다. 이에 대한 욕망은 젊은이에게나 늙은이에게나 평등하다. 삶은 우리에게 모든 시기에 자신의 한계를 넘어 다른 사람이 될 기회를 던져주는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미 늦었어”라고 고개를 떨궈서는 안 된다. “자기 욕망에 솔직하며 흔들림 없이 자기를 시험하며 계속 나아가라. 자기를 실현하는 삶이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휴식이 아니라 강하게 만드는 단련에 있다.” 브뤼크네르가 힘주어 하는 말이다. 그러니 자신을 매력적이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일상을 꾸준히 가꾸라.
하지만 브뤼크네르의 격려는 중년에게 막막함으로만 다가온다. 우리에게 어떻게 젊음을 누려야 할지, 인생의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가꾸려면 어찌해야 할지를 일러주는 현자는 많았다. 그렇지만 오십 이후를 어떻게 가꿔야 할지를 알려주는 지혜는 턱없이 적다. 예전에 오십 대는 노인이었다. 지금의 오십은 늙지도 젊지도 않다. 일터에서 중심이 되기에는 나이가 많고, 은퇴하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앞으로 나에게는 삼십 년도 넘게 생생한 세월이 남아 있다. 나는 누구처럼, 어떻게 인생 후반부를 꾸리란 말인가?
브뤼크네르도 이런 고민에 깊이 공감하는 듯싶다. 그도 “연약함과 권태밖에 보이지 않는 노년이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 모범이 되는 사람은 철학의 모든 원리와 맞먹을 만큼 귀하다”며 한숨을 쉰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기에 역사에서 처음 맞는 새로운 중년 세대인 그대가 앞으로 인류의 롤모델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오십 대는 완숙함을 밀어내고 젊음을 문화의 표준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세대다. 이제는 길어진 수명에 맞게 오십 대의 매력을 생생하게 키워내야 한다.
과거에 젊음은 핸디캡이었다. 미숙함과 고삐 잡히지 않은 열정은 청춘이 떨치지 못하는 그림자인 탓이다. 중년에도 핸디캡이 있다. 일상의 생기와 행복이 점점 “자신의 창자, 기관지, 관절에 좌우되는 상황”이 많아지지 않던가. 그러나 약해지는 몸에 단점만 있지는 않다. 서투름과 길들여지지 않은 열의가 되레 젊음의 특권이자 매력이 되었듯, 중년에 이르러 뚜렷해지는 나약함도 장점이 되기도 한다. 플라톤은 “눈의 시력이 약해질 때에야 비로소 정신의 혜안은 예리해진다”고 했다. 오십은 약해지는 육체를 통해 겸손의 지혜를 익히는 나이다. 그리고 약점을 통해 새로운 인생 성장 스토리를 가꾸어간다.
브뤼크네르는 이렇게 묻는다. 도스토옙스키가 간질이 없었다면, 프루스트가 천식을 앓지 않았다면, 루소나 카프카가 우울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과연 그들의 예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각자의 병을 예술적 영감의 전주곡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중년인 그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인류 역사에는 내리막길을 오르막길처럼 가는 자들이 있었다. 비극의 주인공에게서는 영웅의 아름다움이 풍긴다. 중년인 나에게 달리는 핸디캡들 역시 되레 내 삶을 빛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브뤼크네르에 따르면, 오십에 다다른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대의 전성기는 지나지 않았다. 완전히 성공한 인생은 되레 불행하다. 그이에게는 이제 과거를 곱씹는 일밖에는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십에는 성공의 의미를 달리 잡아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과의 화해가 아니라 자기 역량과의 화해”다. 과거의 성취에 매달리기보다 자신이 젊었을 때와는 다른 결의 삶을 가꿔야 한다는 의미다.
“평범한 일상에도 아름다움, 형제애, 선한 의도와 만나기 마련이다.” 높이 올라가지 못해도 삶을 아름답고 보람차게 할 방법은 많다. 그러니 과거의 자기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라. “황혼은 새벽을 닮아야 한다.” 지금의 오십 대는 늘어난 수명에 맞게 어떻게 후반기 삶을 열어야 할지를 보여줘야 할 사명을 안은 세대다. 인류의 역사가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줄 그대를 지켜보고 있다. 오십인 그대여, 용기를 내시기 바란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반백철학: 교사이자 철학박사인 안광복이 오십 대에게 철학을 처방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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