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을 위한 인간 개별자들의 노력은 기후붕괴를 막는 데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리 사회에 오랜 고민을 안겨왔다. 개인의 의지를 압도하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패스트패션과 공장식 축산 같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가 성장을 떠받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스템은 대규모 에너지 자원을 필요로 하고, 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세계는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게다가 세계 상위 10% 부유층은 일상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의 49%를 차지할 만큼 부와 소비를 함께 독점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 모순 속에서 개별자들이 일상에서 하는 탄소중립 실천이 끼칠 영향은 수치상으로 마냥 초라하게만 보인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순 없다. 우리는 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를 극복할 대안사회를 외치는 것과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한겨레21이 녹색전환연구소와 함께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을 기획한 까닭이다. 기후붕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모아 한 달 동안 일상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일일이 확인해 기록하는 동시에 탄소배출량 감축도 시도하게 하는 실험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생생한 경험을 한곳에 모으고, 이들이 느낀 기후붕괴 관련 공공 의제를 공론장으로 밀어 올리는 공공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게 이번 실험의 목적이다. 공공 저널리즘은 정부의 정책 결정자나 권력자 혹은 전문가의 정책 의지가 시민들에게 하향식으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정책 의제를 찾아 상향식으로 밀어 올리는 개념을 일컫는다. 실험 참여자 공모에는 200여 명의 시민이 신청했다. 한겨레21과 연구소는 이 가운데 50명의 참여자를 선정했다.
2024년 7월1일 시작한 한 달 살기는 가혹한 과정이었다. 자신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매시간 기록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지만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한여름 무더위에도 에어컨 사용이나 샤워, 외식 횟수를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이 걸려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당장 필요한 상품을 구입해 로켓택배로 배송하고픈 유혹을 참고, 채식을 위해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하는 지난한 사연들이 속속 쏟아졌다. 시민들은 그러면서도 실험의 중간 점검을 위해 온라인 간담회 네 차례, 오프라인 간담회에 두 차례 참여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27명은 실험 완주를 포기했다. 끝까지 완주한 23명도 끝내 목표했던 탄소배출량 감축에는 실패했다.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서 실험마저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시민들은 한 달 실험을 통해 지금 당장 한국 사회에서 기후붕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정책 의제가 무엇인지 찾아냈다. 한겨레21은 시민들의 도전기와 함께 이들이 찾아낸 정책 의제를 다음호까지 두 차례에 걸쳐 생생하게 보도한다.
사이토 고헤이의 저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에게는 ‘3.5%’라는 수치가 있다. 무슨 수치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의 연구진에 따르면 ‘3.5%’의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들고일어나 진심으로 저항하면 반드시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번 실험이 큰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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