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 인간의 생활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기 위해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런데 산업이라는 단어 앞에 ‘성매매’라는 관형어가 붙으면 저 개념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성매매는 여성의 인격과 신체를 착취해 거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산업과 형용모순의 관계다. 인간을 착취해서 어떻게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의 이런 인식이 무색하게도, 성매매 산업은 성매매특별법 도입 20년이 된 2024년 지금 이 순간에도 이 형용모순적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 활동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성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의 재범 방지 기능이 “사실상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과 2022년 성매매 실태조사에서 사법처리 현황을 연구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장임다혜 연구위원의 평가다. “적발되어도 형량이 높지 않고, 같은 전과가 있어도 집행유예가 나온다. 집행유예 기간에 재범해도 다시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극단적 사례도 있다”1는 것이다. 게다가 성매매로 발생한 범죄 수익 추징이나 몰수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범에 대한 처벌이 이 정도니, 공범에 대해선 말해 무엇하랴. 한겨레21은 이번호와 다음호 두 차례에 걸쳐 표지이야기로 싣는 ‘불법 성산업의 공범들’ 탐사보도에서 이제까지 성구매자와 성매매 알선자의 그늘에 숨어 그 존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공범들의 실체를 추적한다. 이번호에서 먼저 추적해본 공범은 성매매 장소를 제공하고 임대 수익을 올리는 건물주들이다. 성매매처벌법은 ‘성매매에 제공되는 사실을 알면서 건물을 제공하는 행위’도 처벌하도록 규정하지만, 이 법 조항이 있는지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한겨레21이 다시함께상담센터와 추적한 서울 인근 성매매 업소 132곳 중에는 기도원을 기반으로 전국 단위 열성 신도를 모아온 유명 종교인과 군사정권에서 군 참모차장까지 지낸 예비역 3성 장군, 유통업체 대표, 국립대 명예교수인 원로 공학자, 전직 대기업 계열사 대표 등이 건물주인 곳도 있었고, 한 문중이 건물을 소유한 곳도 있었다. 문제는 이 건물주들이 경찰에 적발돼도 “성매매가 이뤄지는지 몰랐다”고 주장하며 발뺌하기 쉬운 구조에 있다. 한겨레21 기자가 한 차례만 현장에 가봐도 이 건물 안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심지어 이 건물 소유자가 이를 수년째 모르긴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성매매와 관련한 신고와 고발로 인해 형사입건만 되어도 경찰의 ‘풍속업무관리시스템’에서 건물주에게 통지가 간다. 그런데도 “몰랐다”고 말하는 이들의 주장을 국가는 너무 쉽게 믿어주고 처벌에 소극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구매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성매매 업소에 다녀온 남성들의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여성을 사물로 취급한 채 신체적 지배권을 거래했다는 걸 떳떳하게 자랑하는 성구매자들과 그 거래를 도구로 경제적 이익을 축적하는 성매매 알선자, 그리고 건물주는 더 이상 주범과 공범으로 분리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모두 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공범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까닭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1. 부산일보 2024년 2월2일치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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