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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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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정치

등록 2022-02-27 06:26 수정 2022-02-2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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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눈처럼 아무도 모르게 왔다.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한겨레21> 뉴스룸에도.

지난주 이미 예보는 있었다. 3명의 기자가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사무실 출근이 불가능해졌다. 한 필자는 다른 가족을 집에서 다 내보내고 확진된 아이를 홀로 돌보고 있다며 원고 마감을 하루 늦춰줄 수 있는지 물었다. 한꺼번에 몇 명의 기자와 필자가 확진되면 잡지 제작에 문제가 생길지, 어림잡아 계획을 세워보려 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다행히 기자들은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격리돼 언제 확진될지 알 수 없는 와중에도, 모두 기사를 썼다.

이번주에는 덜컥 특보가 발령됐다. 바로 내 앞에 눈이 쌓였다. 집과 회사만 오가는 시계추 같은 생활을 해 오미크론 대유행에서 비켜나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함께 식사한 회사 동료의 확진 소식을 들었다. 하루에 17만 명씩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만리재만 오미크론이 피해갈 리 없었다. 밀접접촉자가 된 사실을 알기 전부터 목이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했는데, 확진 소식을 듣고 나니 증상이 더 심해졌다. 부랴부랴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그 결과도 못 미더워 유전자증폭(PCR) 검사까지 받았다.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코로나19 기사를 많이 써왔으니 ‘그분’에 대해 잘 안다고 믿었는데, 막상 ‘그분’이 다가오니 눈이 흐려졌다. 들키지 않았으면 했던, 원초적 공포에 꼬박 이틀을 시달렸다. 불안한 마음은 PCR 검사 ‘음성’ 확인 문자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다. 나약한 마음을 탓하다가, 이번호 조일준 선임기자가 직접 겪은 ‘코로나19 재택치료 아흐레’를 읽으니 내 탓이 아님을 알았다.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모두가 불안한데 접촉자 관리나 격리해제 지침은 혼란스럽고 재택치료를 위한 여러 정보와 물자가 부족한 탓이다.

이제 코로나19 감염은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가 됐다. 모두에게 닥칠 일이라면, 취약계층 등 ‘목소리 없는 자들’에게 닥칠 팬데믹 위기를 어떻게 좋은 정치로, 연대와 우애로 해결해나갈 것인지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깊이 논의해야 한다. 정웅기·장영욱·김상준, 이상윤 선생님이 써준 글에 그 해결의 실마리가 담겨 있다. 머지않아 폭설주의보가 내려질 거라고 모두 알았지만, 각자도생이 아니라 우리를, 그중에서도 가난하거나 혼자이거나 취약한 당신을 어떻게 보호하고 구조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위기를 맞았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정치’가 절박한 때다.

하지만 대선을 10여 일 앞둔 지금, ‘좋은 정치’에 대한 기대는 점점 허물어져간다.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대선 후보들끼리 당신이 대장동 녹취록의 ‘그분’이 아니냐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이세영 <한겨레> 논설위원이 ‘정치 크로스’에서 꼬집었듯이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는’ 윤석열의 당선이, 반대로 ‘상식과 인륜을 압살하는’ 이재명의 당선이 마치 세상의 끝을 의미하는 것처럼 거대 양당은 흩어진 지지층 모으기에만 몰두해 있다. 그것도 가장 ‘나쁜 정치’의 방식으로. 오미크론 공포보다 더한, 종말 공포를 동원한 정치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이번호에는 십수 년째 이야기됐지만 바뀌지 않는 ‘대학 계급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본다. 대학 계급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같은 대학을 10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다. 지역 거점국립대 9곳을 서울대처럼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대학을 개혁하자는 취지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최근 펴낸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나온 이러한 구상이, 국립대학들 사이에서, 국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대선 후보들도 관심을 보인다. 김규원 선임기자가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실현 가능한 구상인지 등을 살펴봤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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