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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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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찾아 ‘적어도’ 20건

등록 2021-11-10 16:22 수정 2021-11-11 08:04

‘읽을 수가 없다. 마음이 아파서….’

제1386호 ‘살릴 수 있었던 아이’ 기사 밑에 달린 댓글입니다. <한겨레21>은 2013~2020년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됐음에도 죽음에 이르고 만 아이 20명을 처음으로 전수분석했습니다. 댓글을 읽고 그 20명의 죽음을 하나하나 살펴볼 때의 막막함이 떠올랐습니다. “소보로빵을 흘리면서 먹는다”고, “소풍에 가고 싶다”는 말에 차마 표현하기 힘든 학대 행위가 벌어진 사례 개요를 읽다가, 한 번씩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사례 개요에서 “친모에 의한 학대 정도가 심하지 않고 아동이 사건 처리 의사가 없다” “외관상 특이사항이 없다”는 등의 문구를 읽었을 때는 화가 났습니다.

20명 앞에는 ‘적어도’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을 통해 정부가 파악했다는 ‘2013~2019년 재학대 사망자 수’ 자료(12건)를 먼저 확보했습니다. 재학대 사례는 최근 5년 동안 아동학대로 신고·판단됐던 사례가 또 신고돼 아동학대로 재판명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한눈에 봐도 이 자료에 누락된 사건이 많았습니다. 2013년 공분을 샀던 ‘칠곡 계모 사건’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12건이 전부일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과 함께 판결문, 언론 보도를 뒤져보며 하나하나 사례를 추가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사례까지 확보한 게 ‘최소한’ 20건이라는 겁니다. 정부에서 누락한, 그래서 국가의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아이는 몇 명이나 되는 걸까요. 아이들이 신고된 뒤 숨질 때까지 모든 과정을 분석한 보고서는 겨우 2건에 불과합니다.

자료를 뒤지며 실명이나 가명이 붙은 아이는 그 이름 때문에, 이름을 모르는 아이는 이름이 없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생후 26일부터 만 12살까지 평균 나이 만 5살(4.95살)인 아이들은 적게는 1차례, 많게는 6차례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마지막 신고로부터 죽음까지 ‘살릴 수 있었던’ 평균 493일이 있었습니다. “사건은 계속 같은 패턴으로 벌어지는데 업무 주체들은 소통하지 않고 분절적으로 각자 업무만 수행한다.”(김영주 민변 아동인권위원장) 6명의 아동학대 전문가가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아동학대 대응 체계를 질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25개 직군 가운데 ‘아동학대 징후 체크리스트’를 갖춘 직군은 의료계 정도만 있었지만 청주교육청 초등 교사 9명이 2021년 9월 교육계 첫 아동학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 징후를 미리 발견해 살릴 수 있는 아이를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21>도 이 질문을 계속 붙잡고 가야겠습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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