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는 장난꾸러기다. 늑대 옷을 입고 강아지를 괴롭히고, 벽에 못을 박아 집을 어지럽힌다. 엄마가 혼내자 맥스는 소리친다.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버릴 거야!”(I’ll eat you up!) 엄마는 저녁밥도 안 주고 맥스를 방에 가뒀다.
(여기서부터는 맥스의 상상이다.) 맥스는 1년쯤 바다를 항해한 끝에 ‘괴물 나라’에 도착한다. 무서운 소리로 으르렁대고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는 괴물을 제압할 마법의 주문은 “조용히 해!”(엄마들이 자주 하는 이 말은 무서운 괴물도 꼼짝 못할 정도로 힘이 세다). 맥스는 괴물 나라의 왕이 되어 머리에 뿔이 달린, 노란 눈의 괴물들과 함께 신나게 논다. 하지만 어느 순간 쓸쓸해져서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맥스는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그곳엔 “아직도 따듯한”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화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모리스 샌닥) 속 이야기다. 1963년 미국에서 출간됐는데,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너무 되바라진 잔혹동화로 여겨져서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아이들을 불러 괴물 흉내를 내며 이 책을 직접 읽어줬다. 동화 속 ‘괴물’은 아이들 마음 깊이 숨겨진, 공격적이거나 부정적인 자아를 상징한다. ‘엄마를 잡아먹어버린다’는 말은 “자신의 존재가 부모의 세계에 합쳐져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서천석,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을 드러낸다.
아이들에게 삶이란 것은, 어른이란 존재(특히 엄마와 아빠)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때때로 ‘괴물’같이 생각된다.
하지만 아이는 어지럽히고 말썽 피우고 소리 지르는 자기 내면의 ‘괴물’과 대화하고 신나게 놀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점점 커나간다. 아이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미성숙한 자아, ‘괴물’이 산다. 그렇다고 모두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밥 준다고 할 때까지 얘는 굶는다’ ‘걍 하루 종일 온전히 굶겨봐요’ ‘3일까지 굶어도 안 죽어’…. 정인이를 입양한 양모와 양부가 2020년 8~9월 주고받은 휴대전화 메시지 내용의 일부를 판결문에서 읽어내려가다 ‘괴물’을 봤다. 예쁘고 통통하고 잘 웃던 정인이는 결국 빼빼 마른 몸 곳곳에 멍이 든 채로 2020년 10월13일 세상을 떠났다. 태어난 지 16개월, 입양된 지 8개월 만이다. 정인이를 살릴 기회는 있었다. 소아과 의사 등이 3차례나 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정인이의 췌장은 절단되고 장간막은 파열된 상태였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아동학대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인이 양모와 양부의 1심 판결문(2021년 5월14일 선고)을 읽었다. 판결문 곳곳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 정인이만이 아니었다.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되고도 숨진 아이들 20명의 사연을 읽다가도 ‘괴물’을 마주쳤다. 가끔은 숨을 고르고, 가끔은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임지선 기자는 자료를 보면서, 기사를 쓰면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한겨레21>은 정인이처럼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 20명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전수분석했다. 2013~2020년 아동학대로 숨진 피해자 사례 가운데 학대 의심 신고가 되고도 숨진 아이들의 사례만 따로 추렸다. 정부는 이러한 피해자의 정확한 통계조차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20명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정인이’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왜 20명의 아이를 살릴 수 없었을까. 임지선 기자와 고한솔 기자가 아동학대 전문가 6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분석했다.
누군가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괴물’ 몇몇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눈감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인이를 죽인 것은 ‘괴물’일지 몰라도, 정인이를 살리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괴물이 아니라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살리지 못했던 제도와 시스템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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